아프리카 토속신앙인 부두교에는 인형을 이용한 주술이 있다. 자투리 천 등으로 적당히 만든 인형에 특정인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넣고 뾰족한 도구로 찔러 상대방에게 저주를 거는 것이다. 지푸라기 인형인 제웅을 이용한 조선 시대 저주 방식과 흡사하다.

얼마전 캐나다 심리학자가 부두 인형(voodoo doll)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미국과 캐나다 직장인 200여명을 상대로 못된 상사를 떠올리며 부두 인형을 핀으로 찌르게 했다. 그 결과 상사의 폭언 등으로 인한 불만이 상당히 해소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심리적, 상징적 ‘복수’를 통해 직장 생활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무리 인형이라도 핀으로 찌르는 것은 께름칙할 수 있다. 부두 인형 실험 결과는 선진국 기업에서도 ‘괴롭히는 상사(bully boss)’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한 연구나 조사 결과도 많다.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60%를 넘는 직장인들이 한 달에 최소 한번 이상 직장에서 무례한 행동을 경험한다고 한다.

한국 기업에서는 이 문제가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유교적 권위주의와 상명하복 문화의 폐해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어느 대기업에서는 임원회의에 앞서 사장이 앉는 자리 주변을 깨끗하게 치워놓는 비공식 매뉴얼이 있다고 한다. 사장이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이른바 ‘짭스병’도 마찬가지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천재적인 감각은 따라가지 못하면서 그의 신경질적이고 독선적인 성격만 닮은 창업자들이 많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한국적 기업 풍토가 만들어낸 씁쓸한 용어다.

그런 측면에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건’에 대한 직원들의 ‘반란’은 주목할 만하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현아, 조현민 자매가 경영에서 물러나는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며 집단 행동에 나섰다. 부두 인형을 핀으로 찌르며 울분을 푸는 게 아니라 조직 차원의 더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한 것이다. 신세대 직장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속도다.

직원들은 카카오톡에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방’이라는 단체방을 만들어 총수 일가를 겨냥한 각종 의혹을 폭로했다. 그 과정에서 흘러나온 동영상과 음성파일에는 정신질환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히스테리적 행동과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 동안 직원들의 속이 얼마나 문드러졌을지 짐작할 수 있다.

총수 일가의 갑질은 단순한 직장 상사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조직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고, 기업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 몸 담고 있는 기업이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직원들의 심경은 참담할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집단 행동은 조직 내 위기 의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기업 승계와 관련해 ‘3세의 저주(third generation curse)’라는 말이 있다. 가족기업이 창업자의 3세까지 이어지기 힘들다는 의미다. 미국 가족기업 중에서 3세 승계에 성공한 기업은 10%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부자 3대 못간다’는 옛말 그대로다. 100년 이상 번창하며 계속 가족기업 체제를 이어가는 곳도 있지만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다.

창업자의 자손들이 CEO 자리에 오르면 기업가치가 파괴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포천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비롯해 유럽, 캐나다 등 세계 각국의 연구 결과가 대부분 비슷하다. 창업자가 CEO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일반 기업보다 우월한 성과를 내지만 2세부터는 일반 기업에 뒤진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대한항공 파문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3세 경영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다. 경영자가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것을 능력으로 착각하고, 직원들을 머슴 대하듯 하며 패악을 부리는 기업의 미래는 더 볼 것도 없다.

물론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물러난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너의 전횡과 독단을 견제할 수 있도록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3세, 4세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자질 검증과 함께 능력과 실적에 따른 인사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대한항공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다른 대기업들 사정도 대부분 엇비슷하다.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시스템과 기업 윤리·문화를 갖추지 못한 채 3세, 4세 시대를 맞고 있다. 끊임 없는 갑질 논란으로 우리 사회의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전근대적 천민자본주의의 탐욕성이 한국 경제의 취약한 고리 중 하나다.

대기업들 스스로 기업 지배구조를 더 깊이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총수 일가의 사적 이익보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장기적 성장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작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어리석음에서는 이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