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크(shark, 투자자를 지칭)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윤하라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심플해빗(Simple Habit)이란 회사를 경영하고 있죠. 지분 5%를 60만달러(한화 6억4000만원)에 매각하려고 합니다.

숫자를 생각하기 전 모두 함께 저를 따라 해주셨으면 해요. 눈을 감겠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 쉬고 천천히 내쉽니다. 자 이제 눈을 뜨세요. 기분 좋으신가요? (웃음) 여러분은 방금 명상을 하신 겁니다. 심플해빗은 쉽게 명상할 수 있도록 돕는 앱이에요. 여러분의 바쁜 일상을 위해 디자인됐죠.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일에 집중하며 편하게 잠들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지 않으실래요?”

김윤하 심플해빗 대표.

2017년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ABC 방송 인기 TV 쇼 '샤크 탱크(Shark Tank)'에 출연한 김윤하(28·사진) 심플해빗 대표의 말투는 자신감이 넘쳤다. '세계 50대 경영 구루(GURU)'로 꼽히는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 버진 그룹 회장, NBA 농구팀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인 마크 큐반(Mark Cuban), 의류 브랜드 '푸부(FUBU)'를 경영하는 데이몬드 존(Daymond John) 등 쟁쟁한 투자가 앞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브랜슨 회장은 “아들이 최근 명상을 시작했는데 아주 행복해 보였다”며 적극적으로 투자 의사를 밝혔고, 방송 후 김 대표와 심플해빗은 큰 주목을 받았다. 세부 조건 차이로 실제 투자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브랜슨 회장은 김 대표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했다.

김 대표는 듀크대를 졸업(2011년)한 후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2013년 초 직장을 그만두고 스마트폰 잠금 화면 광고 스타트업 ‘로켓(Locket)’을 창업했고, 2년 후 모바일 커머스 업체 ‘위시(Wish)’에 이를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2016년엔 명상으로 삶의 균형을 되찾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심플해빗을 창업, 두 번째 도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월 19일(현지시각) 샌프란시스코 심플해빗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 앱스토어 1위·명상 세션 1000개 넘어…“스트레스 때문에 시작”

-간단한 회사 소개를 부탁한다.

“미국에서 심플해빗은 ‘5분 명상 앱’으로 유명하다. ‘2017 구글 플레이 베스트 앱(Google Play's Best Apps of 2017)’에 선정됐고 애플 앱스토어 명상 카테고리에서도 1위를 했다.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해결하려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구분해 맥락에 맞는(contextual) 세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숙면을 취하고 싶을 때’, ‘연인과 헤어졌을 때’, ‘섹스 메디테이션’ 같은 방식이다.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 덜 받고, 더 좋은 삶을 살며 더 많이 성취하길 바란다. 서비스를 내놓은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16년 겨울 팰로앨토에서 창업했다.”

ABC 방송 인기 TV 쇼 ‘샤크 탱크(Shark Tank)’에 출연한 김 대표.

-아이템이 독특하다.

“다른 평범한 명상 앱과 확실히 다르다. 우리처럼 콘텐츠 많은 곳은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가르치는 1000개 이상의 명상 세션을 만날 수 있다. 경쟁사의 경우 강사 한 명이 여러 콘텐츠를 공급하는 수준이지만, 우리는 말 그대로 ‘명상계의 스포티파이(Spotify,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명상계의 넷플릭스(Netflix)’다.

유명한 명상 강사라도 자기만의 명상 앱을 만들긴 어렵다. 우리는 명상 포털, 명상 플랫폼을 만들었다. 검증된 강사라면 누구나 우리 플랫폼에서 세션을 운영할 수 있다. 스포티파이에서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음악 채널을 고를 수 있는 것처럼 명상 세션도 취향대로 고를 수 있게 했다. 우리는 세션 품질을 관리하며 수익도 강사들과 나눈다.”

-두 번째 창업인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3~4년 전까지만 해도 명상해본 적 없었다. 첫 회사를 운영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러다 명상을 시작하게 됐다. 많을 땐 하루에 8번도 했다. 명상이 일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더라. 직원들과 어려운 대화를 나눠야 할 땐 화장실에서 5분 간 명상한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명상 해야지’라는 막연한 접근법보단 특정 문제·목표를 놓고 명상하는 것이 사용자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스탠퍼드에서 MBA 하면서 유명 명상 강사들과 인터뷰를 많이 했다. 그들은 새로운 마케팅 채널 혹은 유튜브 같은 명상 플랫폼을 원했다. 오프라인 스튜디오 강의, 인스타그램 마케팅이 그들의 유일한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심플해빗 모바일 앱 구동 화면. ‘안정이 필요할 때’, ‘숙면을 취하고 싶을 때’ 등 다양한 명상 카테고리를 선택할 수 있다. 사용자 경험(UX)이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앱 스포티파이와 비슷하다.

-반응은 어느 정도인가.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하지 않나. 많은 사용자가 명상을 올해 목표로 삼고 앱을 사용해주고 있다. 별도로 구성한 ‘새해 결심 세션(new year’s resolution session)’도 반응이 좋았다.

사용자들이 심플해빗에서 명상을 총 몇회 했는지 집계하고 있는데 올해 1월 700만회를 돌파했다. 1년 전만해도 직원이 2명밖에 없는 회사였다.”

-매출 현황·누적 투자 유치 금액이 궁금하다.

“실리콘밸리 유명 액셀러레이터(창업 투자·육성업체)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YC) 프로그램을 지난해 3월 졸업했고, 졸업한지 5개월 뒤인 8월 기준으로 매출액 100만달러(11억원)를 돌파했다.

지난해 4월 초기 투자(seed)로 250만달러(약 27억원)를 유치했다. 실리콘밸리 멘로파크에 있는 NEA(New Enterprise Associates)가 투자를 리드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 타이라 뱅크스부터 드류 휴스턴까지…“당신이 아는 문제를 해결하라”

-유명인들로부터 투자를 많이 받았다.

“톱 모델인 타이라 뱅크스(Tyra Banks)가 로켓에 투자했고, 드롭박스 설립자인 드류 휴스턴(Drew Houston)이 심플해빗에 투자했다.

솔직히 말하면 심플해빗은 투자 안 받으려고 했다. 첫 회사를 경영할 땐 제품 나오기 전에 투자받았는데,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투자금 날리지 않으려고 목숨 걸게 되고 제약도 많이 생겨 여러모로 힘들었다. 너무 초기에 투자 받으면 집중력이 분산되고 책임이 커지는 단점도 있다. 심플해빗은 내 자본으로 시작했고 제품 내놓은 후 사용자가 늘어나던 시점에 투자받았다.”

김 대표는 명상의 효과를 직접 체험한 후 심플해빗을 창업했다.

-투자자들이 잠재력을 알아본 것인가.

“하나 잘한 게 있다면 내가 잘 아는 문제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직접 명상을 해보니 ‘이런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시작했다. ‘스타트업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다. 명상이 정말 도움 된다는 사실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더 찾으면 됐다.”

-동기 부여는 어떻게 하나.

“심플해빗 사용자 중엔 암 환자, 우울증 환자도 있다. 미션 혹은 더 높은 목적을 가지는 것, ‘내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고 마음먹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사용자들이 좋아할 포토 앱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동기 부여가 안 되더라.

‘당신이 잘 아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말이 있다. 목적과 미션이 이끄는 비즈니스가 결국 더 재밌다. 채용도 더 잘 된다. 스타트업은 돈이 없기 때문에 돈으로 사람을 살 수 없다. 인재를 채용하려면 의미 있는 미션을 제시하는 편이 낫다. 스타트업은 업앤다운이 잦아 조직원이 흔들릴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뚜렷한 목적이 더 필요하다.”

-왜 실리콘 밸리인가.

“실리콘 밸리에선 스타트업의 성공과 실패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래서 훌륭한 인재가 정말 많다. 문제가 있거나 조언을 얻고 싶은 경우 한 두 사람만 건너면 훌륭한 조언자를 찾을 수 있다. 굉장히 열린 태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인터뷰해 고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동등해야 행복한 관계가 가능하다. 서로 힘을 합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다.

물론 단점도 있다. 물가, 렌트비가 굉장히 비싸다. 엔지니어가 많긴 하지만 딱 맞는 사람 찾기는 쉽지 않다. 테크 공룡들이 돈을 많이 주고 좋은 엔지니어 빼가는 일도 많다.”

심플해빗 직원들.

-구체적 예를 든다면.

“여기선 매일같이 밋업(Meet-up·모임)이 열리는데, 최근 한 밋업에서 한 벤처 투자자(VC)가 ‘스마트폰을 잘 못 쓰는 어머니가 심플해빗을 해보라고 권했다’고 얘기하더라.

피드백을 굉장히 잘 해주는 문화가 있다. 스타트업 설립자들이 피드백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이런 기능 있으면 좋겠다’, ‘이런 점이 좋다’와 같은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고 서로서로 추천도 굉장히 많이 해준다.”

◇ 매일 아침 직원 모두 명상… “리스크를 줄이려면 빨리 시작해야”

-가장 힘든 점은.

“외롭다. 설립자(founder)가 된다는 건 회사가 망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 직원들은 회사가 망해도 다른 회사 가면 된다. 결정을 할 때마다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요즘엔 주말에 일을 안 하는데, 첫 회사에선 아침 9시부터 새벽까지 쉬지 않고 3년 동안 일했다. 명상 앱 회사여서 좀 다르긴 한데 그래도 힘들다.

첫 회사를 경영할 때 사업 모델을 바꾸면서 15명의 직원 중 절반을 해고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경영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첫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면서 조직 문화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심플해빗의 경우 운영팀을 일찌감치 채용했다. 자유로운 의사소통, 친밀감 향상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이벤트로 게임룸에 가거나 영화도 같이 본다. 아침엔 모두 함께 명상을 꼭 한다.

스타트업이라 다들 고생하며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모두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업무 효율을 위해서라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매주 금요일엔 차나 원하는 음료를 마시며 대화하는 ‘드링크 나잇(drink night)’ 시간도 가진다.”

심플해빗 샌프란시스코 오피스.

-목표가 궁금하다.

“페이스북에선 사람들이 ‘나 결혼했어’, ‘아기 가졌어’와 같은 긍정적인 이벤트만 공유한다. 하지만 콘텐츠 소비 관점에서 보면 내가 가진 문제를 확인하고, 헤쳐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심플해빗의 명상 콘텐츠를 통해 사용자들이 각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페이스북 타임라인과 다르게 정말 많은 사람이 힘든 상황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명상 시장에서 배웠다.”

-예비 창업가를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창업은 어렵고 리스크가 많다고 하는데, 어린 나이에 시작할수록 리스크는 더 적다. 창업 아이디어나 열정이 있다면 빨리 시작하는 게 가장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다.

셀프 케어도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입 시간보다 중요한 건 결과물이다. 명상이나 운동을 했더라면 첫 회사를 경영할 때 더 좋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일만 열심히 하지 말고 자기 관리도 꼭 하길 권한다.”

김윤하 대표는

2011년 듀크대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2013년 초 대학 동기와 스마트폰 잠금 화면 광고 스타트업 로켓을 창업했다. 2015년 모바일 커머스 업체 위시에 로켓을 매각한 후 이듬해 심플해빗을 창업했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발표한 ‘30세 이하의 창의적인 기업가 30인(30 Most Creative Under 30)’, 포브스지가 발표한 ‘30 under 30 컨수머 테크놀로지’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