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으로 시작된 갑질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경영인과 준법위원회 도입을 선언했다. 이에 석태수 한진칼 사장(대표이사)과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이 각각 전문경영인과 준법위원장을 맡아 한진그룹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석 사장과 목 전 재판관은 1955년생 동갑내기이자 경기고·서울대 동문이다.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왼쪽)와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

24일 재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마련 중이다. 조 회장은 지난 22일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를 모든 직책에서 사퇴하도록 조치하면서, 대한항공에 대해 전문경영인 부회장직을 신설해 석 사장을 보임하겠다고 밝혔다.

석 사장은 1984년 대한항공으로 입사해 주로 경영기획 부문에서 일했다. 2005년 대한항공 미주지역본부장을 역임한 뒤 2008년 한진 대표이사 전무를 거쳐 2013년 12월 한진해운 사장을 맡았다.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에는 한진칼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석 사장은 서용원 ㈜한진 대표이사(사장)과 더불어 조 회장의 오른팔과 왼팔로 꼽히는 인물이다.

석 사장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도입되면 한진칼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면서 대한항공 부회장직을 겸임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경영 전면에 나서기보다 조직 내부에서 소통을 원할하게 하고 화합을 다지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경영을 맡고 있는 조 회장과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사이에서 의견 조율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지난 22일 발표된 내용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이라는 큰 그림만 그렸고, 세부 내용은 순차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석 사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을지도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석 사장이 위기에 빠진 한진그룹을 구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이번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이 조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에서 비롯된 만큼 오너 일가에게 직언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지만, 석 사장은 조 회장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인물이라는 평이 나온다. 다만 대한항공·한진해운·한진칼 등 그룹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친 만큼 내부에서 능력을 인정 받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해운·금융업계에서는 석 사장이 2016년 한진해운 경영 위기 당시 조 회장 눈치를 보느라 정확한 회사 상황을 제 때 보고하지 못해 그룹의 대처가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 관계자는 “석 사장은 윗 사람 비위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조 회장 측근이라고 해서 제 역할을 못 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한진그룹이 지난 23일 준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한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의 역할도 주목 받고 있다. 목 위원장은 1983년 인천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법원행정처 차장, 헌법재판관 등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공익활동 조직인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목 위원장은 준법위원회를 맡아 국내·외 준법 관련 사항을 총괄 지휘하는 동시에 그룹 차원의 감사 업무와 위법사항 사전점검·개선방안 마련·감사 요청 기능 강화 등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준법위원회가 한진그룹의 내부 비위를 관리·감독하더라도 이번에 문제가 된 오너 일가의 갑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책이 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물벼락 갑질 논란은 직원이 아닌 오너 일가인 조 전 전무가 일으킨 문제인데, 준법 경영을 강화한다고 해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