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이후 시세가 급락하며 열기가 한풀 꺾인 가상 화폐 판에 정치인들이 뛰어들고 있습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가상 화폐 발행 공약을 내놓고 있는 것이죠. 현재 블록체인(분산저장) 기술을 도입하거나 가상 화폐 발행에 나서겠다고 한 후보는 서울·부산·경기·경북·충북 등 벌써 10명이 넘습니다.

가장 활발한 곳은 서울입니다.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박원순 현 시장은 "서울시에서 사용할 수 있는 S-코인을 만들겠다"며 일찌감치 가상 화폐 발행을 선언했습니다. 박 시장은 청년수당, 공무원 복지 포인트, 전기·수도·가스를 절약하면 받는 에코마일리지 등을 가상 화폐로 줄 계획입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도 이달 초 "블록체인 기술을 서울시 행정에 도입하겠다"고 했습니다.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장 후보들도 앞다투어 가상 화폐 공약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민주당 박준희 관악구청장 예비후보는 지역 화폐 개념으로 관악코인을 발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민주평화당 이성일 광주서구청장 후보는 일명 '서구코인'을, 한국당 박상돈 천안시장 후보는 지역 복지 수당을 전자화폐처럼 지급하는 '천안사랑 코인'을 발행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한 술 더 떠 자신의 지역구를 '가상 화폐 허브 도시'로 유명한 스위스 주크처럼 육성하겠다는 후보도 나옵니다. 한국당 이철우 경북도지사 후보는 "블록체인 기업을 유치해 경북을 동양의 주크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공약을 보면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가 많은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 후보자들이 주로 내걸었습니다. 가상 화폐 투자에 관심이 많은 20~30대의 마음을 돌려보기 위한 시도로 보입니다. 그런 탓인지 후보들의 공약이 블록체인 기술보다는 가상 화폐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재 각 지역에서 발행 중인 종이 상품권을 그저 가상 화폐로 바꿨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죠. 시 행정·복지 시스템에 적용하려면 고쳐야 할 법도 많습니다. 그런데 중앙정부가 가상 화폐에 대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는 지금, 지방정부 차원에서 가상 화폐를 도입해 행정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