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위치한 코엑스는 1979년 개장한 이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시, 세미나, 쇼핑, 외식, 문화체험을 위한 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하에 위치한 쇼핑몰도 멀티플렉스, 수족관 등과 함께 다양한 식당과 점포들이 꽤 활성화 돼있었다.

문제는 시설이 낡았다고 판단한 코엑스측의 리뉴얼 과정에서 벌어졌다. 공공기관 성격을 갖는 조직의 단순한 판단이 사고를 일으켰다. 공간을 새로 디자인해 통일된 이미지를 갖게 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동선이 미로같이 너무 복잡해졌다. 더욱이 공사비를 투입해 시설을 개선했다는 명분으로 임대료를 올리는 바람에 상권이 활력을 잃게 됐다.

공급자 중심의 공공조직의 한계가 반영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복합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부동산 사업자 같은 마인드로 일을 벌였다. 그로 인해 멀쩡하던 시설에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들여 오히려 망쳐 버렸다.

활성화 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코엑스몰을 신세계에 넘겼고, 신세계는 스타필드 코엑스몰로 변신 시켰다. 투입된 자본을 기준으로 공간의 가치를 판단하고 이를 임대료로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많이 불러 모으는 것이 공간의 가치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우선 미로 같은 전체 공간 한 가운데에 별마당 도서관이라는 실내 광장을 만들었다. 책을 통해 꿈을 펼치고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열린 공간을 배치했다. 대형 서가에 5만권 이상의 책을 비치해 누구나 볼 수 있게 했다. 한쪽에서는 작은 콘서트나 강연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그 공간에서 임대료 수입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불러 모아 나머지 공간의 가치가 올라 갈 수 있게 한 것이다. 기둥도 디지털 사이니지를 입혀 광고 등 추가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매체로 만들었다. 그 외의 공간에도 연령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공간을 유치해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쇼핑몰이 아니라 새로운 컨텐츠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몰링(malling)형 공간을 만들었다.

코엑스 경우를 보면서 전국의 전통시장 재생 사업을 생각해본다. 시장으로서의 역할이 떨어져 쇠퇴하고 있는 시설을 현대화하면 다시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하고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3조원이 넘는 돈이 투입되었는데도 재래시장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고연령에 경제력이 약한 사람들만 재래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해외 직구까지 늘고 있는 시대에 재래시장을 살리려면 단순한 시장으로서의 재생이 아니라 다른 가치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통이 나쁘던 시절에 형성된 어디를 가나 똑 같은 전통시장이 아니라 예를 들어 로컬푸드 매장, 로컬푸드 식당, 로컬 메이커 등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나 주상복합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공간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참여하는 사람의 수에 의해 페이스북의 가치를 판단하듯이 우선 사람이 모여야 한다.

스타필드 코엑스몰에서 그 큰 공간을 임대료 받는 대신 엄청난 개방형 도서관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모아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듯이 가치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져 일차방정식 같은 사고로는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코엑스몰이나 재래시장 재생 사업의 실패는 가치혁신이 없는 평이한 방식의 사업의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