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경제연구원, 국내외 연구 자료 살피며 경제 영향 점검
美 FRB "내외금리 차, 민간 자본 흐름에 미치는 영향 확대"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기준금리가 이미 한국 기준금리보다 높은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진 가운데 연말이 되면 한미 금리 격차가 최대 1%포인트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올해 2~3차례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한국은 기껏해야 한 차례 금리를 올리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이런 상황이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다. 한은 경제연구원을 중심으로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심화될 경우 글로벌 자본 흐름이 어떻게 변하고 경제에는 어떤 파급효과가 나타나는지 분석한 국내외 연구들을 심도있게 점검하고 있다.

특히 한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외 금리 차가 민간 자본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졌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당장은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한국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지만,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에서 자본 유출입이 커지면 금융시장뿐 아니라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다만 자본 유출입은 금리 차만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국의 경제·금융시장 여건에 따라 파급효과는 다르다. 4000억달러에 육박하는 외환보유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등 한국 경제의 견고한 경제 체력(펀더멘탈)을 감안할 때 시간적인 여유는 남아있다. 그러나 한미 금리 차이가 커지고 그 기간이 장기화하면 국내에 들어온 해외자본의 유출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 연말 한미 금리 격차 1%포인트까지 벌어질 수도

19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많은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올해 한은이 현행 연 1.5%인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요측 물가 압력이 높지 않고 세계 보호무역주의 확산, 원화 강세로 저물가 기조가 심화되는 상황이 고려된 것이다. 골드만삭스, 씨티, HSBC, 노무라, JP모건 등 IB들은 한은이 하반기 한 차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 투자은행들은 이주열(사진) 한은 총재가 올해 하반기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시에테제네럴은 아예 올해 금리 인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성장 모멘텀이 둔화됐고, 고용 상황도 악화돼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연 1.50~1.75%인 미국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두세 차례 인상되면 연 2.00~2.25%, 2.25~2.50%로 오르는데 이 경우 한미 금리 격차는 최대 1.0%포인트로 벌어질 수 있다.

한미 금리 역전이 심화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규모 자금 유출이다. 해외 자금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면 금융자산 가격이 급락하고 이는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1분기~2008년 2분기 기간, 내외금리 차가 민간 자본 이동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지만 2009년 3분기~2013년 2분기 중에는 내외금리 차가 1%포인트 확대되면 해당 국가에서 GDP 대비 0.9%의 민간 자본이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외금리 차가 발생하고 주변국이 뒤늦게 금리 인상에 나서더라도 자금 유출은 피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스콧 데이비스 댈러스 연방은행 이코노미스트는 “1972~2016년 중 84개 국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주요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2~3년 뒤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자본유출이 발생하는데, 해당 국가가 뒤따라 금리를 인상해도 자본유출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경상수지 흑자·충분한 외환보유액·개방된 금융시장이 충격 완화

한미 금리 역전이 심화되면 그만큼 한국 경제의 리스크 요인이 커지겠지만,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 여건은 리스크를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흑자를 내는 경상수지와 건전하다고 평가되는 재정수지,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외환시장이 내외금리 차 확대에 따른 충격을 완화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이론적으로 한미 금리 역전이 일어나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증권 자금의 유출 압력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분간은 외국인 증권자금이 대규모로 유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총재는 그 이유로는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에 육박하고 경상수지도 상당 폭 흑자를 지속해 대외건전성이 견실하고 양호하다고 진단했다.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와 충분한 외환보유액은 내외금리 차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 방어벽으로 꼽힌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와 외환보유액 수준은 내외금리 차 확대에 따른 충격을 가늠하는 잣대다. 데이비드 이코노미스트는 “기축통화국과 주변국 간 통화정책의 동조성을 살펴본 결과,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크고 외환보유액이 충분하지 않으며 순대외부채가 많을수록 기축통화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본유출이나 환율 상승 등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크고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쌓아놓고 있고 순대외부채 규모가 크지 않으면, 기축통화국과 금리 차이가 벌어져도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줄어들 수 있고 어느 정도 차별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의미다.

경제 기초 체력과 금융시장의 구조도 중요하다. 게오르요스 게오르야디스 유럽중앙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통화 긴축 정책이 주변국 실질 국내총생산(GDP)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결과, 무역통합도와 금융시장 성숙도가 높을수록, 환율 변동폭이 클수록, 노동시장이 유연할수록 미국의 통화 긴축이 해당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줄리아 베빌라쿠아 미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정책 축소)에 나섰던 2013년 사례를 보면 경제 펀더멘털이 좋지 않은 국가일수록 자본유출과 통화가치 절하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특히 재정수지와 경상수지 적자폭이 큰 국가일수록 많은 자본이 유출되고 통화 가치도 큰 폭으로 절하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