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기 시흥 정왕동에 있는 한국금형기술교육원. 1772㎡(약 536평) 넓이의 실내 실습동에 들어서자 고교 실습생 10여 명이 금형(金型) 제작용 자동화 설비를 조작하고 있었다. 화장품 용기 등을 찍어낼 금속 틀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을 인솔해온 금종현 휘경공고 교사는 "직접 수억원짜리 설비를 조작해 보면서 학생들이 금형 작업을 더 쉽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가 일본·독일업체와 납기가 같아서는 일자리 없어져” - 지난 13일 경기 시흥 정왕동에 있는 한국금형기술교육원에서 서울 휘경공고 학생들이 금형 제작 설비를 직접 조작하고 있다.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은 지난해 약 150억원을 들여 9917㎡(약 3000평) 부지에 대규모 실습 공간을 마련했지만 근로시간 단축 이슈 탓에 졸업생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기술교육원은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이 지난해 4월 150억원을 들여 세운 실습 교육 공간이다. 고교 실습생뿐 아니라 취업을 앞둔 일반인들도 4개월가량 숙식을 하며 금형 실무를 배운다. 기술교육원은 매년 300~500명의 졸업생 배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해외 진출로 일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이슈까지 맞물리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면서 졸업생들이 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임영택 금형조합 전무는 "미숙련 신입 채용을 꺼리는 금형 업계를 위해 큰돈을 투자해 실습 공간을 마련했는데 금형 업황이 불투명해지면서 기업들이 채용을 중단하고 있다"며 "지난해 개설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납기가 생명… 근로시간에 민감

금형 업계가 근로시간 단축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수주(受注) 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금형은 자동차·선박에서 장난감, 반도체까지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다. 1분1초를 다투는 글로벌 경쟁에서 얼마나 빨리 금형을 거래처에 납품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국내 업체들은 일본이나 독일 같은 경쟁국과 비교해 주문 물량을 빨리 납품하는 게 강점이었다. TV용 금형을 예로 들면 일본 금형업체는 50일 이상 걸리지만, 국내 업체는 30일이면 거뜬히 해낼 정도다. 주문을 받으면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해가며 거래처가 원하는 납기를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2~3년 내 주당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예전처럼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지 못하게 된다. 몇년 뒤면 수주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금형 업체들이 신규 채용을 사실상 중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순황 조합 이사장은 "조합 차원에서 조사를 해보면 대부분 업체가 '올해 채용 계획이 없다'고 답한다"면서 "일본·독일 업체보다 납기가 빠르다는 장점이 사라지면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 정체 등 설상가상

금형 업계에서는 금형 생산과 수출이 정체기를 맞은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국내 금형 산업은 주요 수요처인 자동차와 조선업이 동반 부진에 빠지면서 내수가 얼어붙은 가운데 원화 강세까지 이어지며 해외 업체와 가격 경쟁력에서도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잇달아 해외로 옮기는 것도 물량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자국산(産) 금형 제품 구매를 늘리면서 2014년 32억달러(약 3조4400억원)까지 늘었던 수출액은 지난해 29억달러(약 3조1000억원)로 줄었다. 현재 생산 세계 5위, 수출 세계 2위의 금형 강국이지만 앞날은 녹록지 않은 것이다.

박 이사장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본만큼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기계 설비 투자에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고, 연장 근로시간도 일본(연간 720시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할 경우 연간 허용되는 추가 근로시간을 현재 625시간에서 95시간가량 더 늘려달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금형 업계는 의욕이 떨어져 옴짝달싹을 못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3개월인 탄력적 근로제를 1년으로 확대하는 것 같은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