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굴기 방해되는 도시바 메모리 M&A
중미 무역분쟁도 얽혀 당분간 교착상태 전망
업계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사업 차질 없을듯"

일본 도시바(東芝)의 반도체사업 매각이 중국의 독점금지법(반독점) 심사 승인을 받지 못해 결국 지난달 31일로 예정된 매각 기한을 결국 넘겼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자국 낸드플래시 사업 성장의 방해가 되는 한미일(韓美日) 연합의 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앞으로도 승인해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한미일 연합에 소속된 SK하이닉스(000660)에 미칠 여파에 주목하고 있다. 만에 하나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가 무산될 경우 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계기로 낸드플래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SK하이닉스의 로드맵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다.

16일 반도체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특수목적법인 '판게아(Pangea)'는 지난 13일까지 중국 반독점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중국 정부 승인 이후 계약을 마무리하는 데까지 2∼3주가량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이번 인수·합병(M&A)의 2차 마감 시한인 다음 달 1일까지 마무리하기가 힘들어졌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 소재 도시바 본사 건물 전경.

지난해 9월 도시바 본사와 계약을 체결한 한미일 연합은 애초 올해 3월 말까지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마무리 짓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 수급이 많은 주요 8개국에서 반독점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최종 관문인 중국 당국의 심사만 중단된 상태다.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브라질, 필리핀, 대만 등 7개국은 도시바 메모리 매각안을 승인했다.

중국 입장에서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메모리 인수는 자국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굴기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빅딜’이다. D램 분야에만 강했던 SK하이닉스가 이번 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바탕으로 삼성전자와 대등한 수준의 경쟁력을 가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 연내 낸드플래시 사업을 본격화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 최근 중국과 미국이 국제 통상질서를 놓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중국 정부가 미국 기업이 관련된 M&A 거래에 대한 검토를 일부러 지연시키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외신은 "중국이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 퀄컴의 네덜란드 NXP반도체 인수 등 미국 기업이 관련된 M&A 거래 승인에 대한 검토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의 심사가 지연되며 도시바가 도시바 메모리 매각을 철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시바는 대외적으로는 일단 매각을 계속해서 진행할 의사를 나타냈지만, 당장 매각 대금이 필요했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온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실제 이달 1일 취임한 구루마타니 노부아키(車谷 暢昭) 도시바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도시바 메모리가) 매각되지 않아도 경영상에 문제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이렇다 할 동요 없이 차분하게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베인캐피털이 인수를 위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3950억엔(약 4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간접 참여했다. 10년 동안 15% 넘는 지분을 취득할 수 없으며 도시바 메모리의 기밀정보에도 접근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최악의 경우 도시바 메모리 인수가 무산된다고 하더라도 낸드플래시 경쟁력에는 큰 차질이 없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1990년대 이후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을 주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2010년대 들어 삼성전자가 더 높은 생산성을 확보했고, 최근 수년간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과 기술력 격차가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에 정통한 관계자는 "셀(Cell)을 수직으로 쌓는 3D 낸드플래시가 새로운 시장 표준이 된 이후 삼성전자, 도시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낸드 기업 간 경쟁력 격차가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며 "어느 기업이 생산성을 극대화해 가격 경쟁 구도로 흐르고 있는 낸드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