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은 10%의 인체세포와 90%의 미생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인체에는 100조개 이상의 세균이 존재한다. 대부분은 소장과 대장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이라 부른다.

최근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질환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면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뇌, 소화기계, 순환계, 면역계 등 인체의 다양한 질환들과 관련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2016년 5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마지막 과학 연구 프로젝트로 ‘미생물’ 연구를 하겠다는 ‘국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6년 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은 ‘한국인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뱅크’ 구축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200여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한국인 장에서만 처음으로 발견된 미생물 8종을 확인하는 데 성공하고 학계에 보고하기 위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연구진은 아직 전세계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미생물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한국인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인체 다양한 질환과의 연관성 연구에 도움을 준다는 계획이다.

◇ 산소 있으면 죽는 절대혐기성 미생물 4600개체 찾아

미생물은 산소를 포함한 공기 중에서 호흡하는 것처럼 자라는 ‘호기성’ 미생물과 산소가 있는 환경에서 살지 못하는 ‘절대혐기성’ 미생물로 나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미생물 연구는 유산균 등 ‘호기성’ 미생물 위주로 이뤄졌다.

생명연 연구진은 2016년 말부터 지금까지 건강한 성인 2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절대혐기성 장내 미생물 약 4600개체수를 찾아냈다. 찾아낸 개별 미생물의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기존에 학계에 보고된 미생물이 아닌 새로운 미생물을 찾는 동시에 군집 분석을 하고 ‘장내 절대혐기성 마이크로바이옴 뱅크’를 구축하는 게 연구의 목표다.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이정숙 생명연 생물자원센터 책임연구원은 “장내에는 산소가 없어 절대혐기성 미생물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배양할 수도 없고 다루는 데 특별한 장치도 필요하다”며 “한국인 장내 절대혐기성 마이크로바이옴 뱅크를 만들어 연구자들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암이나 비만, 대사질환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연구를 할 때 도움을 주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2023년까지 약 800여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군집 분석 및 뱅크를 만들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성인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유아나 노인 등 생애 전주기에 걸친 한국인의 장내 미생물 연구도 곧 시작한다.

◇ 항암제 효과 높이는 미생물 찾는다

장내 미생물은 면역세포나 내분비세포, 신경세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병 발병과 치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수년째 보고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생명연의 ‘한국인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뱅크’ 구축과 연계한 항암 치료 효과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선행 연구에서 장내 미생물을 조절하면 면역세포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김유미 KAIST 교수 연구진은 현재 분당서울대병원과 중앙대병원, MD헬스케어와 함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군집 특성이 암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항암 면역치료제를 환자에게 투여할 때 특정 장내 미생물이 있는지 여부가 효능이 바뀌는지에 대한 연구다. 위암과 대장암 환자 각각 150명씩 모아 혈액과 세포, 분변 시료를 확보한 뒤 정상인과 대조해 정상인에게 있지만 암환자에게 부족한 장내미생물을 추적 연구할 계획이다. 현재 위암 환자 50명과 대장암 환자 50명을 모았다.

김유미 교수는 “학계에선 같은 약을 먹어도 효과가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장내 미생물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이정숙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환자의 대변에서 얻은 장내 미생물을 분석 연구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 라이브러리가 구축돼야 각종 질병과 미생물의 연관관계를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질병 치료와 연계한 한국인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