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주식시장에서 최근 주가가 급등한 삼성그룹 바이오 계열사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를 활용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지난 5일 이후로만 20% 가까이 급등했다. 꼭 1년 전인 작년 4월 10일 17만3500원에서 245%가량 상승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최대주주(43.4%)인 삼성물산이 ‘이재용→삼성물산→삼성전자’로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지분을 삼성전자(005930)에 넘기고, 그 매각 대금으로 삼성생명(032830)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8.23%)을 매입할 수 있다는 게 시나리오의 골자다.

이날 장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고가인 60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삼성물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가치는 17조2300억원에 이른다. 법인세를 제외하면 약 12조원 이상을 현금화할 수 있다. 이는 삼성전자 지분을 3~4%가량 매입할 수 있는 규모다.

현재 삼성전자 1대주주(8.23%)는 금융회사인 삼성생명이고 2대주주인 삼성물산(4.63%)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지분 3~4%를 사오면 1대주주는 삼성물산으로 바뀐다. 삼성물산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17.08%)이며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이서현 남매도 각각 5.47%의 삼성물산 지분을 갖고 있다.

증권가에서 나온 삼성그룹 지배구조 예상도.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팔아 삼성전자 지분을 사면 지배구조 중간의 ‘이건희 → 삼성생명’이 지배구조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 지배구조 예상도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을 전량 매수하는 것을 가정해 만들어졌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전량 매수하려면 삼성바이오로직스 외에도 삼성생명, 삼성SDS 지분 등도 매각해야 한다.

◇ 금산분리 위반 해소하고 ‘김기식 리스크’ 비껴간다…증권가 실현가능한 시나리오로 거론

증권 전문가들은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삼성그룹은 다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우선 삼성그룹 입장에선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 ‘리스크’를 비껴갈 수 있다. 김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평가방식을 취득가가 아닌 시가로 적용해야 한다며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했다. 현행 보험업법상 보험사는 계열사 지분을 총자산의 3%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는데, 평가 기준은 취득가다.

그러나 평가기준이 시가로 바뀌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대부분 팔아야 한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가치를 시가로 계산하면 24조원가량이다. 삼성생명 총자산 38조원의 3%는 1조1400억원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1조1400억원어치를 빼고 모두 매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시나리오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 따라 사실상 예정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000810)의 금산분리 위반도 모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자사주 13.3%를 2년에 걸쳐 전량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내 자사주 소각이 마무리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은 10%를 넘어서게 된다. 현행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대한 법률(금산법)에선 대기업 계열 금융사들이 비금융회사를 소유할 때 지분 10%를 넘게 보유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금융당국 사전 승인 없이 10% 이상 보유할 경우 금산법 24조에 따라 의결권 제한이나 매각명령 등 제재를 받는다.

김준섭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금산법을 위배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현 상황에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이 인수하는 방안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메리츠종금증권 은경완 연구원 등 7명 애널리스트는 공동 작성한 ‘기업 지배구조 시리즈’ 보고서에서 “이 방안은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 규제 피하기, 삼성전자의 외형 성장 한계 극복 등 여러 측면에서 고려해볼 만한 방안”이라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5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삼성, 또 꼼수?” 여론 부담…지주사법 개정안도 걸림돌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한계점과 취약점도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만 넘겨선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8.23% 중 3~4%만 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8.45%에서 14%가량으로 하락할 수 있다. 다만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SDS 등 다른 계열사 보유 지분을 모두 활용하면 삼성전자 주식 대부분을 살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또 자금력이 있는 삼성전자가 오너의 지배구조 강화에 활용된다는 것도 삼성그룹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부재한 동안 삼성전자는 마땅한 신사업을 추진하지 못했었는데 부회장이 나오자마자 지배구조 개편부터 시행하면 또 꼼수를 쓴다고 여론이 따가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 취득하면 현재 국회에 발의된 지주회사 규제 강화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보험업법을 피하려다 지주사법을 맞딱뜨리는 꼴이다. 지주사법 개정안은 지주회사 강제 전환 요건을 계열사 장부가가 아닌 시가로 하는 것이 골자다. 삼성물산이 현 상황에서 삼성전자 지분을 더 사면 삼성전자 지분가치가 삼성물산 자산총액을 뛰어넘어 삼성물산은 강제로 지주회사로 전환된다. 지주회사가 되면 삼성전자 지분율을 20%까지(개정안 통과 시엔 30%) 높여야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와 관련한 규제가 워낙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정확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그래도 가치가 뛰고 있는 바이오 계열사(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있으니 여러 방면으로 고민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74% 오른 58만3000원에 장을 마쳤고, 삼성물산은 3.97% 오른 14만4000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0.65% 하락했고 삼성생명은 0.44% 떨어졌다.

한편 장 마감 뒤엔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 404만여주를 전량 매각한다는 공시가 나왔다. 이는 지배구조 개선과 별개로 공정위 명령에 따라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는 작업이다. 지금까지는 삼성SDI와 삼성물산이 서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