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으로 쓴 소설을 찾습니다."

KT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총상금 1억원을 내걸고 국내 처음으로 AI 소설 공모전을 개최한다. AI가 음성을 알아듣고 음악을 재생하거나 날씨를 알려주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됐던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KT 전대진 상무는 "소설은 인간의 상상력을 반영하는 창작물이기에 AI가 쉽게 따라올 수는 없겠지만, AI가 창작의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모전에는 AI 개발 역량이 있는 개인과 회사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KT는 다음 달 13일까지 참가 신청을 받는다. 참가 신청을 먼저 하고 소설은 6월 3일까지 제출하면 된다. 제출 작품은 KT 홈페이지를 통해 한 달간 독자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7월 1차 심사는 독자들이 평가하고, 2차 심사에서는 AI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면접이 이뤄진다. 마치 논문 심사처럼 AI 기술을 소설에서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최우수상작은 3000만원, 우수상 2개 작품은 각각 2000만원, 다른 우수 6개 작품에 각각 500만원 상금이 돌아간다.

AI, 짧은 웹 소설 만드는 수준까지

AI 소설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1973년 미국 위스콘신대학 연구팀은 2100단어 길이의 살인 미스터리 소설을 작성할 수 있는 AI 시스템을 발표했다. 이후 다양한 AI 기술이 나오면서 이제 이솝우화 정도의 짤막한 이야기를 만드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AI 전문가들은 "논리 추론과 딥러닝(심층 학습) 기반 자연어 처리 기술을 통해 AI를 이용한 소설 작성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만 현재 기술로는 100%의 창작은 불가능하며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공주와 왕자가 결혼한다'는 결말을 사람이 입력해야 AI 논리 추론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플롯(이야기 구조)을 만든다는 것이다. AI는 또 기존 소설을 학습해 이야기 패턴을 분석한다. 가령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여러 소설 작품에서 나왔다면 이 사건의 앞과 뒤에 어떤 장면이 있는지 AI가 논리적으로 파악해 적용하는 식이다.

2016년 일본에서는 AI가 쓴 공상과학(SF) 소설이 일본 호시 신이치 공상과학문학상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마쓰바라 진 일본 공립 하코다테미래대 교수팀이 등장인물과 이야기 줄거리를 구성하면 소설 1000여편을 학습한 AI가 문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하지만 현재의 AI 소설은 주어진 상황에서 논리적인 답을 찾아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파격적인 반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AI 창작은 문체·묘사·구성력과 같은 문학성을 내세우는 전통 소설보다는 웹툰이나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앞세운 짧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는 게 AI업계의 분석이다.

이번 공모전의 주최 측은 "주로 대학·대학원생을 중심으로 벤처기업의 연구팀까지 포함해 적어도 30~40곳의 AI 개발팀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인공지능 벤처기업 퀀트랩도 일찌감치 공모전에 참가서를 제출했다. 유재명 퀀트랩 대표는 "지난 4~5년간 3만편 이상의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을 분석해 100만개의 이야기 전개 패턴을 축적했다"며 "다양한 취향의 독자들에 맞춰 200자 원고지 30장 분량의 웹소설 작품을 여러 편 출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 AI 음반사도 설립

인공지능은 소설뿐 아니라 작곡이나 그림 등 다른 창작 영역으로 점차 도전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는 AI로 그림을 그려주는 '드로잉봇' 서비스를 공개했다. 그리고 싶은 그림 내용을 글로 입력하면 AI가 주문에 맞는 그림을 그려주는 방식이다. 구글도 지난해 AI를 이용해 음악과 미술 작품을 만드는 '마젠타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구글의 더글러스 에크 연구원은 "일렉트로닉 기타의 등장이 음악의 새로운 창작 시대를 연 것처럼 AI가 예술 창작 활동 도구로 활용되면 예전과 다른 획기적인 예술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음반 제작사 엔터아츠가 영국의 AI 음악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주크덱과 함께 AI를 활용한 음악 제작업체 'A.I.M'을 설립했다. 주크덱의 패트릭 스탑스 창업자는 "지금까지는 소수 음악가만 창작의 즐거움을 누렸지만 AI 창작의 등장으로 일반인도 30초 안에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을 창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