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이끄는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6일(현지시각) 시카고 서부에 위치한 혁신센터 ‘엠허브(MHub)’를 방문했다. 파월 의장은 스타트업 ‘앰버아그리커쳐(Amber Agriculture)’가 개발한 농업용 사물인터넷(IoT)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석고 깁스를 대체할 수 있는 방수 기능의 외골격을 생산하는 스타트업 ‘캐스트21(Cast21)’ 관계자와 만나 최신 기술과 혁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기준금리와 같은 통화정책을 통해 거시 경제를 움직이는 연준 의장이 산업 현장을 찾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기업의 투자나 혁신을 촉구하는 것은 정부 역할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의 현장 방문을 놓고 미 연준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하기 위한 이벤트라는 해석도 나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파월 의장이 엠허브를 방문하기 전 경제클럽에서 강연한 내용에 주목했다. 파월 의장은 이 강연의 상당 부분을 생산성 관련 논의에 할애했다. 그는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혁신이 정체되면서 노동생산성이 둔화되고 있다며 이는 임금상승률 정체와 저물가로 연결된다고 진단했다. 안정적인 물가 관리를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는 중앙은행 입장에서 생산성 저하는 간과할 수 없는 리스크 요인인 셈이다.

생산성 저하에 대한 우려는 미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강조한 부분도 생산성이었다. 이 총재는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우리 경제가 당면한 주요 과제로 ‘생산성 향상’을 꼽으면서 “규제 완화, 노동시장 효율성 제고, 일관된 기업 구조조정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고, 지난 2일 취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는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 사실인데, 재정의 역할은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목표가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권고는 국제기구에서도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우리 정부와 연례협의를 마친 뒤 발표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조적, 경기 순환적 요인에 따라 한국 경제의 생산성 개선이 정체되고 있다”며 “한국 경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개혁과 효율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생산성 향상은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 해결하기는 어려운 과제다. 미 연준이나 한은이 해야 할 일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어떤 정책 수단이 필요한지 전문가적 시각을 밝히고, 정부가 이를 수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보면 한은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정부는 혁신 성장과 구조개혁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는 소홀한 채 국민혈세인 재정을 퍼붓는 사실상 분배 정책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이 총재가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의 필수 요건인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정부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