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정치광고 실명제’를 도입키로 했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등 ‘가짜 뉴스(Fake News)’ 논란 직후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뛰었지만 가짜 뉴스의 실체가 확인되고, ‘데이터 스캔들’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각국의 제재 움직임이 현실화되자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한 여론 조작을 막으려는 각국의 규제 움직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미국 의회 청문회 소환을 앞두고 정치광고 실명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 페이스북, “광고주 신원 검증, 공개하겠다”

페이스북이 4월6일(현지시각) 정치광고 광고주의 신원을 검증하고 광고주를 공개키로 했다고 미국 의회 전문 미디어 ‘더 힐' 등이 최근 보도했다.

마크 주커버그 CEO는 “가짜 계정 운영을 통해 거짓 정보, 분열을 야기하는 콘텐츠 유포 행위를 훨씬 어렵게 하겠다”고 밝혔다.

롭 골드만 페이스북 광고담당 부사장 등은 “광고주들은 앞으로 페이스북의 승인을 받아야 선거나 정책 현안 관련 정치광고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 부사장은 “정치 광고들은 페이지 상단에 ‘정치광고’라는 문구와 함께 광고주를 밝힌 상태로 게시될 것”이라며 “이번 주부터 인증 절차 시험에 들어 갈 예정이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올 봄부터 ‘정치광고’ 라벨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페이스북 , ‘가짜 뉴스’ 논란에 ‘항복’ 선언

페이스북의 정치광고 실명제 도입 발표는 미국 대선 등 선거 과정에서 가짜 뉴스를 통한 여론 조작이 확인됐음을 시인한 뒤 나온 ‘항복 선언'이다. 기업의 자율 조치로 ‘포장’됐지만 사실상 소셜 미디어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먼저 시인한 셈이다.

‘더 힐' 등은 “페이스북이 2015년부터 2년간 러시아 정부가 배후인 인터넷 리서치에이전시(IRA)가 8만건의 정치 선전물을 올렸고 이들의 선전물이 페이스북 이용자 2900만명에게 전달됐다는 보고서를 미 의회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IRA는 ‘텍사스의 심장’, ‘블랙매터스유에스(BlackmattersUS)’ 등 가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뒤 정치광고비 10만 달러를 내고 페이스북 이용자에게 전달되도록 했다고 ‘더 힐’은 보도했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러시아 에이전시의 정치 선전 활동이 확인됨에 따라 큰 파문이 예상된다.

2016년 미국 대선을 흔든 ‘가짜 뉴스.’ ‘가짜 뉴스’의 파급력이 뉴욕타임스 특종 보도 보다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

‘가짜 뉴스' 논란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가 CNN, 워싱턴포스트 등 비판 언론의 기사를 ‘가짜 뉴스’로 비난하는 정치 공세로 시작됐지만 언론들의 추적 보도를 통해 ‘실체’가 확인됐다.

역설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알제리 출신 학생들의 학교 입학을 금지했다'(abcnews.com.co, 페이스북 공유 220만명), '힐러리 클린턴이 ISIS에 무기를 팔았다' (thepoliticalinsider.com, 79만명) 등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대한 근거없는 선전, 선동 기사의 제작, 유포, 전달 범위 등이 밝혀졌다.

“유럽 마케도니아 소도시의 10대 청소년들이 미국 정치 사이트 140개를 만들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페이스북과 구글 애드센스를 통해 돈을 벌었다. 이들이 만든 가짜뉴스의 파급력이 뉴욕타임스의 특종 보다 더 컸다”는 ‘버즈피드’의 ‘가짜뉴스 국제 비즈니스 실태'에 관한 추적 보도도 파문을 일으켰다.

◆ 주커버그 ,의회 증인 출석··· 미국·유럽, 규제 강화 움직임

‘가짜 뉴스', ‘데이터 스캔들’의 파문이 확산되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이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전망이다.

저커버그 CEO는 지난 4월4일 영국의 데이터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를 통한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 유출 범위가 5000만명이 아니라 8700만명일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82%) 뿐 아니라 필리핀(1.4%)·인도네시아(1.3%)·영국(1.2%)·멕시코(0.9%) 이용자가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 영국 의회는 저커버그 CEO의 의회 출석을 요구했고 호주 정부는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필리핀에서도 논란이 한창이다.

유럽의회는 내년 5월 유럽 의회 선거를 앞두고 ‘가짜뉴스 규제 법안'을 마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올해부터 소셜미디어 사업자가 차별·혐오 발언이나 가짜뉴스를 방치할 경우 최고 5000만유로(665억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법률을 도입했다. 독일의 페이스북 이용자가 3100만명에 달해 ‘페이스북 규제법’이라 불린다.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오는 10일(현지시각) 미 상원 법사·상무위원회 합동 청문회, 11일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 가짜 뉴스, 데이터 유출 사태 관련 책임을 추궁받을 예정이다.

툭하면 기업 총수들을 불러내는 한국 의회와 달리 미국 의회의 청문회 소환은 주요 정책의 전환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페이스북 최고위 경영진들이 데이터 기업의 개인 정보 악용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추적 보도가 쏟아지고 있어 청문회를 기점으로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 규제 법안이 입안되고 최악의 경우 주커버그 CEO 등 최고 경영진의 형사 처벌과 퇴진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짜뉴스’, ‘데이터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페이스북이 갈수록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