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이유로 지난 1년간 한국 신작 게임에 자국 시장 영업 허가권을 단 한 건도 내주지 않은 반면 같은 기간 중국 게임의 한국 시장 진출은 111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수출 효자 산업으로 떠오른 국내 게임 산업이 중국과 불공정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지난해 3월~올해 3월 한국을 제외한 다른 외산 게임엔 판호(版號·게임 서비스 허가권)를 412건 내준 가운데 한국 게임 판호는 한 건도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 말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조치를 철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중국 당국은 여전히 판호를 내주지 않고 있다. 반면 중국 게임은 한국 시장에서 작년에 매출 70% 증가를 기록했다. 중국 정부가 한국의 게임 허가권을 무기로 실력을 행사하고, 한국은 중국 게임사들에 안방 시장을 서서히 내주고 있는 것이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중국에 항의는커녕 업계 애로 사항조차 듣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수출은 제자리걸음… 중국 게임은 한국에서 활개

앱 분석 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구글 모바일 앱(응용 프로그램) 장터에 출시된 중국산 모바일 게임은 136가지로 2016년 114가지보다 22가지가 늘어났다. 사드 보복이 시작된 작년 3월 이후에 한국에 진출한 중국산 모바일 게임은 111가지다. 국내 게임 업계는 작년 중국산 모바일 게임이 한국에서 2000억원대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6년에 비해 800억원가량 증가한 수치다. 업체 관계자는 "중국산 게임 중엔 1년 사이 매출이 3배가량 증가한 인기 게임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게임 업계에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한·중 간 게임 무역수지가 역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지난 10여년간 중국은 한국 게임의 대표적 수출 시장이었지만, 수출길은 막히고 새로운 게임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안방만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사드 보복 이전인 2016년 한국 게임의 중국 수출액이 1조원대에 이르지만 대부분은 넥슨의 던전앤파이터나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등 출시된 지 10년 가까이 된 게임이 올린 매출이다. 이 게임들의 인기가 사그라질 경우 단숨에 수천억원대 매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강경석 콘텐츠진흥원 게임 본부장은 "중국 시장에 들어간 신작이 없어 국산 게임의 중국 수출은 당분간 저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드 제재 풀어도 노골적 한국 게임 죽이기 계속될 것"

사드 보복이 풀리더라도 중국의 한국 게임 봉쇄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이 한국 게임을 넘어설 때까지 자국 게임 보호를 계속할 것"이라며 "사드는 중국의 명분이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에 판호를 신청한 국내 주요 게임은 리니지2레볼루션(게임사 넷마블), 리니지 레드나이츠(엔씨소프트), 배틀그라운드(블루홀) 등 10여 건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북미, 유럽 등지에서 빅히트를 거둔 대작이다. 중국은 '검토 중'이라며 판호 심사를 질질 끌고 있다. 중견 게임 업체 블루홀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게임을 공짜로 서비스하고 있다. 무료 게임은 판호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게임 시장에서 대부분 게임은 6개월이 지나면 수명이 다한다"며 "이제 와서 판호가 나와 봐야 다른 신작 게임과 경쟁이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한 게임 업체 관계자는 "여러 부처가 게임 산업을 자기 소관이라고 영역 다툼을 하면서 정작 게임 업체가 힘들 때는 의견 청취도 제대로 안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게임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는 "중국에 판호 미발급에 대해 항의는 몇 번 했지만, '한국 게임을 차별한 적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