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로봇 연구 분야 학자 50여명이 카이스트(KAIST)와 한화시스템이 추진하는 인공지능 무기 연구를 문제삼으며 카이스트와의 모든 공동 연구에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한화시스템과 KAIST가 지난 2월 20일 KAIST 나노종합기술원에서 국방 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 개소식 및 현판식을 진행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간) 토비월시 미국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 등 로봇학자 50여명이 이같은 내용의 공개서한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학자들은 카이스트와 한화시스템이 개발하는 무기가 '킬러 로봇'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인간의 의미있는 통제가 결여된 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카이스트 총장이 할 때까지 카이스트의 어떤 부분과도 공동연구를 전면적으로 보이콧할 것"이라며 "이를 카이스트 총장에게 요청했으나 확답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유엔이 군비증강 위협을 줄일 방안을 논의하는 시점에 카이스트처럼 명망 있는 대학이 군비경쟁을 가속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이 유감스럽다"고 강조했다.

앞서 2월 20일 카이스트는 한화시스템과 '국방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를 공동 설립했다. 이 센터에서는 국방 AI 융합과제 발굴·연구, 연구인력 상호교류 등이 진행된다. 특히 AI를 기반으로 하는 지능형 항공기 훈련시스템을 비롯해 지능형 물체추적·인식기술, 대형급 무인잠수정 복합항법 알고리즘 개발도 연구된다.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카이스트는 학문 기관으로서 인권과 윤리 기준을 높은 가치로 여기고 있다"며 "인간의 의미있는 조종 없이 작동하는 자율무기 등 인간 존엄성에 반하는 어떤 연구 활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킬러로봇을 개발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카이스트는 이날 별도의 해명자료를 통해 "국방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는 대량살상무기, 공격무기 등 인간 윤리에 위배되는 연구와 통제력이 결여된 자율무기를 포함한 인간 존엄성에 어긋나는 연구 활동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도 이번 논란에 대해 "공동 연구 목적이 미래 병력 감축과 지뢰 제거·폭탄 해체처럼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을 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인공지능 기반 무인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다"며 "살상무기 연구가 목표가 아니다"고 말했다.

FT는 한화가 집속탄 생산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집속탄은 어미 폭탄 속에 들어있는 새끼 폭탄이 흩어져 무차별 실상을 하는 전쟁범죄급 무기라는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한화가 만든 집속탄이 전력배치된 것은 맞다"면서도 "집속탄은 정부의 전력화 계획에 따라 생산했던 것이다.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환경 때문에 개발된 것이지만, 민간 살상용이 아니다. 수출용도 아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