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28일 오후 6시쯤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테헤란로에서 가로수길 2차로 길로 접어들어 몇 발짝 옮기자 오른편에 1·2층이 통째로 빈 건물이 나타났다. 공실(空室)은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양쪽에서 잇달아 눈에 들어왔다. 저녁 식사 시간이었지만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종업원보다 손님이 많은 매장은 거의 없었다. 유독 두 매장에 손님이 몰려 있었는데, 네이버의 캐릭터 상품 매장인 라인프렌즈 스토어와 아이폰을 파는 애플스토어였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한 상가 건물 1층에‘임대’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상권 중 하나인 가로수길은 최근 주력 업종인 의류 매장들이 매출 감소를 못 견디고 빠져나가면서 공실이 대거 생기고 있다.

#2. 1일 오후 6시쯤 서울 종로구 익선동 골목길. 기껏해야 어른 2명 정도가 나란히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길 양쪽 곳곳이 한옥을 개조한 레스토랑과 디저트카페였고, 가게마다 길게 늘어선 줄로 길을 오갈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많은 행인이 스마트폰으로 음식점 메뉴와 가격, 후기 등을 살펴보며 '맛집'을 찾고 있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대로변 유명 상권에서 최고가(最高價) 임대료를 지불해온 브랜드 패션·잡화 점포들이 온라인 상거래의 확대와 임대료 상승, 소비 침체 등이 맞물려 철수하고 있다. 이들이 빠진 자리는 '체험형 매장'이나 캐릭터 상품점 또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식당·음료점으로 채워지고 있다. 한편 소규모 식당과 카페 등은 임대료가 비싼 지역 대신 뒷골목에 가게를 내고도 온라인 소셜 미디어 홍보를 통해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임대료, 온라인 확대에 고전하는 소매점

대형 상권에서 '가장 목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던 패션·잡화 소매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가로수길에서는 올해 1월 미국 유명 패션 브랜드인 '홀리스터'가 문을 닫았다. 지난해 이곳에서 아모레퍼시픽 계열 화장품 판매점 아리따움, 미국 패스트패션 브랜드 포에버21이 폐점했다. 압구정에서는 올해 1월 프랑스 명품 주방용품 기업 '르크루제'가 철수했고, 청담동에서는 랄프로렌과 아베크롬비 등이 폐점했다. 이들 자리 상당수는 지금도 공실이다. 그 결과 최근 서울에서 가장 핫한 상권으로 통하는 가로수길을 포함하는 신사역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13년 말 7.5%에서 작년 말 10.6%로 뛰었다. 같은 기간 압구정 상권 공실률은 6.8→17.2%로 급등했다.

원인은 높은 임대료와 온라인 상거래의 확대이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가로수길 주요 상권의 3.3㎡당 월세는 올해 들어서만 10% 정도 올라 150만원에 육박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최근 수년간 저(低)금리에 따른 유동성이 부동산에 쏠리면서 건물 가격이 올랐고, 비싼 가격에 들어온 투자자는 임대료를 더욱 높게 부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기반 '체험형 매장' 등 인기

대기업 패션·잡화점이 버티지 못하고 떠난 '고(高)임대료 상권'에 들어오는 곳은 새롭거나 색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장이다. 먼저 카카오톡·라인 등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의 '캐릭터 매장'이다. 모바일 메신저 중 가장 많은 이용자를 가진 카카오톡은 서울 강남과 명동 등 '황금 상권' 위주로 19개의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매장을 열었다. 네이버 라인도 가로수길 외에 홍대 등 주요 상권 요지에 매장이 있다.

매출을 올리려는 의도보다는 고객이 물건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체험형 매장도 인기다. 애플스토어는 애플의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되자마자 만져볼 수 있는 곳이다. 알라딘·예스24 등 온라인 서점이 강남역 등 주요 상권에 낸 오프라인 매장에도 고객이 몰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서적 업체 중 오프라인 매장을 가진 경우는 작년 한 해 온라인 매출이 28.5% 늘었지만, 그렇지 않은 업체 매출은 9% 감소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김성순 전무는 "주된 수익을 온라인에서 올리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오프라인 매장에서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온라인 매출을 더 끌어올리는 트렌드가 확대되고 있다"며 "반면 식당과 카페들은 유명 상권에서 다소 벗어나 있어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싼 곳에 점포를 내고도 입지적 약점을 온라인으로 커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