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한국의 우주개발 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제가 준비된 사람이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2008년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11일 동안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체류하고 귀환한 이소연 박사(40, 사진)가 한국우주인 사업 10주년을 맞아 입을 열었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이 박사는 3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열린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 특별강연에서 이른바 '먹튀(먹고 튀었다)' '우주 관광객' 등 그동안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에 대해 담담하게 소회를 밝히며 10여 년 간의 경험을 털어놨다.

“우주인 사업 10주년을 맞아 제2의 우주인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억지로 만들어서 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이 우주인을 우주로 보내 직접 실험하고 데이터를 갖고 내려와야 할 필요성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박사는 2008년 ISS에 다녀온 뒤 1~2년간 강연이나 언론 활동에 집중했다. 언제까지 강연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찾아왔다. KAIST 기계공학과 석사를 마치고 바이오시스템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의 원래 꿈은 연구자였다. 그러나 우주인 사업에 참여하면서 연구 활동과 논문 작성을 가장 활발하게 할 시기를 놓쳤다. 그에게 이런 부분은 후회가 없다.

그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우주인이라는 기회를 얻은 대신 당연하게도 잃는 것이 있었다”며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 우주인 사업에 지원할 것인지를 물어본다면 다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만 우주인이 된 이후에 저에게 닥칠 상황을 미리 경험했기 때문에 훨씬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3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열린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에서 이소연 박사(가운데)와 학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잠깐이라도 해외에 나가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던 이 박사는 고민 끝에 2014년 버클리대 MBA 진학을 택했다. 이런 그의 고민 과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먹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박사는 이날 그의 선택에 대해 “한국의 과학자, 공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많은데 이분들에 대한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일관성 없었던 정부의 우주개발 정책에 대해서도 입을 뗐다. 그는 “처음 우주인 사업을 기획한 정부와 러시아와 계약한 정부, 우주인을 우주로 올려보낸 정부가 모두 다른 데 해외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며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과학기술 연구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하고 달라지듯 정부가 바뀌면 부처와 정책이 달라지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스템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현재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며 시간 강사와 실리콘밸리 위성 사업 스타트업 ‘로프트 오비탈(LOFT ORBITAL)’의 업무를 도우며 민간 우주개발 사업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그는 “현재 일주일에 두 번씩 로프트오비탈에 나가며 일을 하고 도움을 받으며 배우고 있다”며 “이 모든 경험을 한국 내에서 우주를 개발하고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필요한 경험을 연결할 방법을 찾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자신이 우주인이 되는 데만 29년이 걸렸다고 했다. 다른 일을 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주위 분들은 조급하게 지금까지 뭐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도 해외 어디를 가나 한국 우주인이고 한국 여권을 들고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강연 후 언론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지는 동안 잠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는 한 언론의 오보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약 5년 동안 언론을 피하며 어려웠던 결정과 고민을 하던 과정을 털어놓으며 나온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자들이나 러시아 우주 과학자들을 만나보면 어렸을 때 우주에 대한 꿈을 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든 우주 선진국 우주인들의 가장 큰 역할을 미래 세대에 영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 한 사람의 우주인이 어쩌면 수십 명, 수백 명의 미래 우주 과학자를 키워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만큼 의무감과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다음은 특별강연과 이 박사의 말을 재구성한 일문일답.

―향후 한국의 우주 개발 사업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과학기술이라는 게 실패하면 모든 노력을 허사로 보고 죄인처럼 보는 경우가 많다. 나로호 발사 1, 2차 실패 시 연구자들에게 쏟아졌던 비판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해외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해외에서는 짧은 시간에 그 정도의 로켓 기술을 확보한 한국의 과학기술 역량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할 수 있는 특기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이 화성 간다고 한국도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아주 작은 기술 하나가 한국에서 나와서 필수적인 우주 관련 기술이 됐으면 좋겠다. 우주인 한 명으로 인해 많은 청소년이 우주 과학자를 꿈꿨으면 좋겠다. 준비하고 있고, 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자신에 대한 논란이 국내에서 있었을 때 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나.

“해외 선진국들도 우주인은 의무적으로 강연 활동과 대중 활동을 한다. 그중에서 아이들과 초중고생을 만나 강연을 할 때 느끼는 게 있다. 내 강연을 들었던 초등학생이 3년 뒤에 찾아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다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물어본 적이 있다. 무서웠다.

80세가 넘은 우주인이나 최근 우주를 다녀온 우주인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는 점이다. 저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느냐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우주인이 누군가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ISS에서 진행했던 18개의 과학실험보다 더 어려웠던 게 아이들을 위한 실험이었다. 중력이 미약한 우주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날아 차기’를 하기도, 멀미 때문에 토한 직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물리력 실험을 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ISS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떤가.

“강연에서 자주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우주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면 굉장히 슬프다. 서울은 불야성 같지만, 북한은 완전히 어둡다. 정치와 이념을 떠나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이들에겐 죄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ISS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90분 걸린다. 엄청난 속도다. 그만큼 대한민국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칠 때면 왜 나는 북한이 아닌 남한에 태어났을까 하는 철학적 주제와 마주친다. 과학자, 공학자들이 우주로 올라가면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 생활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나.

“로프트오비탈에서 일하며 배우는 시간과 대학에서 요청이 있을 때 강의를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국과 비슷하다. 강의를 나갈 때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중 지구가 평평하다고 알고 있는 학생도 있다. 한국에서 했던 강연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다.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공학도나 소위 과학영재들에게 강연했다. 미국에서 하는 강연에서 얻는 경험을 한국에서 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지점이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과포자(과학포기자)’, ‘수포자(수학포기자)’에게 미국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로 퇴직한 분이 집 지하에 한국 돈 10억원을 들여 소형 원자로를 만든 뒤 학생들 교육을 위해 나에게 부탁한 적도 있다. 여학생들에게 영감을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이들은 이미 방사선으로 암을 치료하는 연구도 하고 있을 정도다. 우주인이라는 경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선진국에서의 경험을 언젠가 한국에서 풀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