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플라자 합의에 서명하고 돌아온 다케시다 노보루 당시 일본 대장성 대신은 “미국이 일본에 항복했다”고 뿌듯해했다고 한다. 이것이 ‘엔화 강세 = 국력 입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면의 의미를 알면서도 한 정치적 멘트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 일본 경제를 보면 확실한 실언이었다. 실제 그는 나중에 이 발언이 실수였노라고 말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이 1985년 이후 국내 신문을 뒤져본 결과, 플라자 합의에 대한 국내 신문의 분석기사는 1987년에야 처음 나왔다고 한다. 달러 강세 시정 조치라고 표현된 플라자 합의의 진짜 의미를 파악하기는 당시 환경에서는 쉽지 않았던 듯하다.)

다케시다 노보루는 총리 시절이던 1989년에는 부가가치세를 최초 도입하기도 했다. 버블을 잡기 위해 과세 카드를 꺼냈는데 이 조치가 오히려 소비 위축과 디플레이션을 불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물 정치인인 그는 최소한 경제정책만 놓고 보면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이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제2의 플라자합의’가 거론되고 있어서 무덤에 있는 다케시다가 불편할 것 같다. 제2의 플라자합의는 중국만의 얘기인 줄 알았더니 한국에도 불똥이 튀었다. 중국판 플라자 합의, 한국판 플라자 합의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주 금요일(30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약세 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와 연동된 ‘환율 합의설’ 때문에 2개월 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2.4원 하락한 1063.5원을 기록했다(원화 강세). 그날 외국인이 증시에서 1600억원 매도했고, 달러 인덱스(주요 6개국 대비 달러 환율)도 지난주 내내 강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합의설’로 인해 강세를 보인 것이다.

주요 6개국 대비 달러 가치가 올랐기 때문에 원화는 약세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나(?) 합의설 영향인지 하락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나 한국 등 거래 상대국의 화폐 가치가 올라야 수출에 유리하다. 트럼프 정부는 타 정부에 비해 무역적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계속 압박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우연의 일치인지, 미국이 무역적자 때문에 눈엣가시인 국가들의 화폐가 유독 강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아래 그래프 참조)

환율이 우리 경제에 무척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4분기 코스피200 기업들의 이익 추정치가 15~20% 빗나간 이유 또한 원화 강세가 한몫했다. 하지만 환율 합의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정부 간의 합의로 환율이 결정되기엔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

다행스러운 점 또 하나는 최소한 아직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환율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북미회담, 한미FTA 등에 더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게다가 트럼프는 하나를 찍어 개전(開戰) 선언을 한 뒤 한창 싸우다가 다른 데 또 시비(?)를 거는 패턴을 반복하는데 지금 트럼프의 관심은 아마존에 쏠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