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면제와 연계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이 원칙적 타결을 이뤘지만, 한·미 양국이 환율 문제를 놓고 다른 말을 하며 충돌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과 무역대표부(USTR)는 철강과 한·미 FTA, 환율 등이 '협상 패키지'로 논의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한·미 FTA 개정과 환율 관련 논의는 전혀 '별개'라며 미국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美 "철강·FTA·환율은 하나" VS 韓 "FTA와 환율은 별개"

미국 백악관은 28일(이하 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와 국가 안보에 관한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제목의 자료를 통해 FTA 개정과 철강 협상 결과를 전하면서, '불공정한 환율 관행'에 대한 합의도 이번 협상의 성과물로 내세웠다. 백악관은 "한국과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제공하는 관행'을 피하기 위한 합의가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합의문 조항엔 환율 관행과 엄정한 투명성, (환율 개입) 보고와 책임 등에 대한 강한 약속이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도 이날 한·미 FTA 협상 결과를 설명하는 자료를 내고 '환율 합의'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 자료엔 ▲FTA 개정 협상 경과 ▲주요 성과 ▲환율 합의 ▲철강 관세 면제 합의 등이 담겼다. USTR은 "미 재무부가 한국 기획재정부와 환율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경쟁적 평가절하와 환율 조작을 금지하는 조항이 담길 양해각서(MOU)가 마무리되고 있다"고 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같은 날 CNBC방송에 출연, "철강, 환율, 한·미 FTA 세 분야에서 각각 합의를 이뤘다"며 "세 합의는 독립적 이슈 같지만, 전체적으로 한·미 통상 관계를 규정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한·미 FTA 개정 협상과 환율 관련 논의는 별개'라는 입장을 반복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9일 "미국이 올 초부터 한·미 FTA 개정 협상과 환율을 연계하려고 했지만, 강력히 거부했다"며 "미국이 한·미 FTA 결과 발표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환율은 다자간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과 양자 협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USTR이 미국 내 FTA 협상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시도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외신, 환율 합의 기정사실화

외신들은 미국 당국의 발표를 기정사실로 다루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9일 "미국과 한국이 환율 합의를 모색하고 있다"며 "양국 간 합의는 경쟁적 평가절하를 막고,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전했다.

지난 27일 로이터통신은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양국이 한·미 FTA 협상의 부속 합의로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원화의 평가절하를 억제하기 위해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관련 투명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도 28일 한·미 양국이 환율 조항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이 무역 합의에서 이 같은 환율 문제를 포함한 것은 처음"이라며 "미국이 향후 일본이나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에서도 이 같은 환율 거래를 포함하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과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서도 환율 관련 내용을 포함하려 했지만, 일본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주요 외신이나 백악관·USTR의 발표만 보더라도 미국이 이번 협상을 철강·FTA·환율을 묶은 '패키지 딜'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미국이 철강과 자동차, 환율뿐만 아니라 또 어떤 양보를 요구하고 압박했는지 정부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라 허커비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28일 브리핑에서 한국이 농업 부문에서도 양보한 듯한 발언을 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한·미 FTA 개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미국산 자동차 수출이 실제로 늘 수 있겠는가"란 질문에 "자동차 제조업 분야뿐 아니라 농업과 제약 분야에서도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개정 협상 결과에 농업 부분은 포함된 바 없다"고 다시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