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 5G(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를 목표로 통신 인프라(기반 시설) 구축에 돌입하는 통신 업체들이 세계 1위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華爲)의 장비 도입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통신 3사는 5G 장비 사업자 선정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기술 요구 사항을 담은 제안요청서(RFP)를 국내외 장비 회사들에 발송했다. 올해 상반기 예정된 정부 주파수 경매와 국제 기술 표준 규격 결정이 마무리되면 하반기에 장비 업체를 선정하고 투자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통신 3사는 향후 5년간 5G망 구축에 20조원 넘게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거대 시장을 놓고 삼성전자를 비롯해 노키아·에릭슨·화웨이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통신 업체들이 고민하는 이유는 미국을 중심으로 화웨이 장비의 보안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기 때문이다. 아지트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은 26일(현지 시각) 미 통신 업체들이 안보를 위협하는 외국 업체 장비 구입이나 서비스 제공을 금지하는 규제안을 제안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사실상 화웨이를 겨냥한 것이다. 통신 업체 관계자는 "화웨이는 가격만 싼 게 아니라 기술 경쟁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버리기 아까운 카드"라면서도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신·장비 강자로 떠오르는 화웨이

중국 화웨이는 지난해 에릭슨·노키아 등 기존 강자를 제치고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에 올랐다. 중국 시장을 석권한 데 이어 경쟁 업체보다 30~40%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세계시장으로 진군했다. LTE(4세대 이동통신) 시대로 접어들면서 글로벌 선도 업체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웨이는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최고 모바일 기술 혁신' '최고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혁신' 등 8개 부문을 휩쓸며 최다(最多)상을 수상해 3관왕에 그친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하지만 중국 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는 화웨이가 정보 수집 통로로 이용될 수 있다는 보안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이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으로 중국 정부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준규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화웨이가 전국 단위로 깔린 통신·장비를 통해 마음만 먹으면 통화 내용과 스마트폰 위치 정보를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현재 미국 통신·장비 시장에서 퇴출당한 상황이다. 지난 1월 미국 통신 업체 AT&T는 화웨이 스마트폰 출시 계획을 포기했다. 지난달 미국 정보기관들은 미국 의회에서 중국 화웨이와 ZTE 통신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캐나다·호주 정부 인사와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정보 유출 우려로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 업체들 "화웨이를 어찌할꼬"

통신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통신·장비의 10% 안팎이 화웨이 장비로 추정된다. 아직은 삼성전자·노키아·에릭슨 장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LG유플러스가 지난 2013년 국내 통신 업체로는 처음 화웨이 LTE 장비로 서울과 경기·강원 일부 지역의 통신망을 구축했다. 당시 한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에서도 주한 미군 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해 LG유플러스는 서울 용산 미군 기지 근처에는 화웨이 장비를 쓴 기지국을 두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도입했다. SK텔레콤과 KT도 주요 통신망인 기지국엔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지만, 일부 시설에서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 코리아 관계자는 "170여 국가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고 보안 문제는 의혹 제기 수준일 뿐 단 한 번도 보안 사고가 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를 앞둔 통신 업체들이 다른 업체보다 30% 이상 저렴한 데다 기술력까지 끌어올린 화웨이 장비를 뿌리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통신 3사가 기존 LTE망 구축에 15조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기지국을 촘촘히 설치해야 하는 5G망은 이보다 투자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한·중 간 갈등 양상이 지속되는 데다 미국도 사사건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투자 효용만 따지기도 힘든 실정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미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5G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면 과거 LG유플러스가 일부 통신망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 효과를 낳을 것"이라면서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매년 화웨이에 수조원어치의 반도체를 팔면서 화웨이 장비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