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태평양 연안 도시에 출몰한 거대 괴물 카이주(かいじゅう·괴수). 인류는 거대 로봇(예거)을 만들고 카이주에 맞선다.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퍼시픽림:업라이징'은 퍼시픽림(2013년 작)의 속편으로 크고 강해진 카이주와 더 빨라진 거대 로봇의 대결을 다룬다. 사람의 모습을 한 예거는 높이 70~80m, 무게 2500t의 로봇이다. 조종사가 탑승해 자신의 뇌와 로봇을 연결하면 로봇이 조종사의 동작을 따라 하며 괴수와 싸운다. 조종사가 주먹을 뻗으면 예거도 괴물을 향해 무쇠 펀치를 날리고, 반대로 예거가 파손되면 조종사도 같은 부위에 고통을 느낀다.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퍼시픽림:업라이징’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 인류는 정체불명의 괴물 카이주(오른쪽)를 퇴치하기 위해, 조종사의 뇌신경을 로봇과 연결해 조종하는 거대로봇 예거를 만들었다. 전문가들은“거대로봇은 먼 미래에나 가능할 법한 일이지만, 뇌파로 로봇 팔을 움직이는 기술은 이미 구현됐다”고 말한다.

◇뇌파로 로봇팔 조종하는 기술은 이미 가능

결론부터 말하면 예거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사실 사람의 뇌파와 로봇을 연결해 조종하는 핵심 원리는 이미 구현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시카고 의대 니초 해초풀로스 교수는 사고로 팔을 잃은 원숭이에게 로봇팔을 붙인 뒤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움직여 공을 잡게 하는 데 성공했다. 손의 동작에 관여하는 뇌 부위에 전극(電極)을 심고, 원숭이가 '공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면 뇌파(腦波)가 전송돼 로봇팔이 움직이도록 한 것이다. 2016년 10월 척수를 다친 전신마비 중증 장애인이 뇌 속에 칩을 박아 넣어 로봇팔을 조종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기도 했다. 이런 기술을 BMI(Brain-Machine Interface)라고 부른다. 두뇌에서 보내는 신호를 기계 제어 명령으로 바꿔 외부의 보조기기를 움직이는 기술이다.

예컨대 눈앞에 보이는 종이컵을 잡고 싶을 때, 뇌는 '손을 뻗어 컵을 잡아'라는 운동 신호를 내려보낸다. 이 신호는 운동 자극 신경세포가 밀집한 전전두엽과 전두엽이 담당한다. 신경세포들은 받은 운동 신호를 온몸 구석구석 연결된 말초운동신경계에 전달한다. 명령을 받은 근육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움직이게 된다. 반대로 로봇 팔에 가해진 외부 자극을 뇌로 전달하는 실험도 성공했다. 2016년 미 피츠버그대 로버트 가운트 재활의학과 교수팀은 "전신마비 환자에게 로봇팔을 연결해 물건을 만지게 했더니 84%의 확률로 촉감을 느꼈다"고 발표했다.

영화 속 파일럿은 출동 때 특수 헬멧을 써 로봇에 접속한다. 이를 비(非)침습형 BMI라고 부른다. 뇌에 직접 전극이나 칩을 넣는 침습형 BMI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이다.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는 "비침습형 방식이 훨씬 편리하지만 두개골 때문에 잡음이 많이 발생해 뇌파를 정확히 잡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거대 로봇을 혼자 조종하면 뇌에 과부하가 온다는 영화 속 설정도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몸을 움직인다고 해서 뇌가 급격히 피로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발로 걸어가는 거대 로봇을 만드는 것도 문제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타는 예거 '집시 어벤저'는 키 81.68m, 무게 2004t이다. 땅 위에서 가장 무거운 동물 아프리카코끼리 수컷(약 6t)보다 330배나 무겁다. 길이가 10배 커지면 부피는 그의 세제곱인 1000배 커지는 '척도 효과' 때문이다.

현재 과학기술로 만든 최대 크기의 인간 형태 로봇 키는 4m 정도다. 일본 스이도바시중공업의 '구라타스', 미국 메가보츠 사(社)의 '마크2', 우리나라 한국미래기술이 만든 '메소드-2'가 대표적이다. 메소드-2는 지난해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회장이 탑승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중 국산 메소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로봇 하반신에 바퀴나 탱크의 무한궤도를 달아야 했다.

◇美 실리콘밸리의 IT 거물들 앞다퉈 뇌과학 투자

미국 IT 업계의 거물들은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기술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4월 "뇌와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 생각만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열릴 것"이라며 "사람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커버그 CEO는 이를 위해 구글 인공지능(AI)팀에서 레지나 듀건 부사장을 영입해 '빌딩 8'로 불리는 하드웨어 개발팀을 맡겼다. 듀건 부사장은 "뇌파를 이용해 문자 메시지를 입력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라며 "분당 100자의 단어를 입력할 때 뇌파 방식이 사람의 손가락 직접 입력보다 5배 빠르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듀건 부사장이 페이스북을 퇴사한 뒤 추가적인 연구 진전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자이자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운영하는 일론 머스크도 2016년 의료연구 회사인 뉴럴링크를 세우고 뇌 기능을 강화하는 초소형 칩 뉴럴레이스를 개발하고 있다. 머스크 CEO는 "컴퓨터와 뇌를 연결하는 텔레파시 소통 기술을 10년 안에 상용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