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관세 유예는 시작일 뿐 안도할 일이 아니다."

"미국은 철강을 볼모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자동차 분야 등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이 22일(현지 시각) 한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를 4월 말까지 잠정 유예했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은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만족할 만한 양보를 얻지 못하면 언제든 다시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강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한·미 FTA 협상에서 대한(對韓) 무역 적자 해소를 요구하는 미국 측의 요구를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철강 관세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국이) 미 의원들의 지지를 받을 (FTA) 수정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은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자동차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측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 관세 면제를 대가로 미국에 수출할 한국산 픽업트럭 관세 유지와 국내 자동차 안전·환경 기준 완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 이후에도 보호무역 기조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철강 하나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통상 전략 전체를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에 대한 철강·알루미늄 관세 명령을 잠정 유예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승인했다고 22일(현지 시각)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유예 대상국에도 수입할당제(쿼터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실장은 CNN에 출연해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 모든 나라는 우리 알루미늄·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쿼터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유예 대상국에 넣은 이유에 대해 백악관은 "(한국은) 북한 핵 위협 제거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등 중요한 안보 관계를 맺고 있다"며 "한국과 미국은 강력한 경제적·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오랜 안보 동맹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대중(對中) 통상 전쟁에 동참하란 압박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조치가 한시적인 유예란 점 때문에 공식 발표를 미루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 머물고 있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3일 "미국 정부의 철강 232조 조치와 관련해 잠정 유예(temporary exemption)를 4월 말까지 받은 것"이라며 "잠정 유예를 받은 국가들은 '조건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철강 관세를 피하려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더 큰 걸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은 EU와의 협상에서 철강 관세 면제 대가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동참하는 등 미국에 더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EU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비슷한 요구를 했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한국이 그동안 세탁기와 태양광 모듈, 반도체 등 미국의 부당한 무역 규제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려던 것을 다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철강 관세 면제를 대가로 다른 주력 산업에서 양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