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진핑

세계 양대 경제 대국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 포성이 울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각) 중국의 불공정 무역과 지식재산권 침해에 맞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對美) 투자도 제한하는 무역 제재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중국도 이에 맞서 미국산 콩·돼지고기 등 농축산물에 보복 관세를 검토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세계가 미·중 무역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 나라와 모두 긴밀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은 '위험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중국은 작년에만 3752억달러의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무역 역조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과 기술 탈취 때문이라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판단이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1일 "중국은 국가가 주도해 시장을 왜곡하고 미국을 압박하면서 미국의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도둑질해갔다"며 대중(對中) 무역 제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미국의 무역 제재는 수십조원대의 관세 부과와 투자 제한 등 패키지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에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인 농업 벨트(farm belt) 10개 주(州)의 농축산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경고하고 나섰다. 연 140억달러(약 15조원) 규모에 이르는 미국산 콩은 3분의 1이 중국으로 수출된다.

美의 압박, 中의 반발

미국은 중국이 자신의 지식재산권을 불공정하게 침해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자국법에 따른 조치를 예고해왔다.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는 신발과 의류·가전 등 최대 100여 가지 중국산 제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고,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중국의 대미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제재 패키지는 미국 산업계의 의견 수렴 과정 등을 거친 이후 발효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974년 제정된 미 무역법 301조에 따라 중국의 무역 관행을 대상으로 최근 한 달 동안 실태 조사를 실시해 이번 조치를 마련했다.

중국은 다양한 보복 조치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중국은 미국산 콩·항공기의 최대 수입국이다. 또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이다. 1조1700억달러어치를 갖고 있다. 중국이 미 국채를 대량 매각할 경우 미 국채 금리가 상승해 미 정부 재정 적자가 악화될 수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산 보잉 대신 유럽의 에어버스를 택하는 등 수입처를 바꾸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선택 강요받는 한국

미국과 중국 간에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한국은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두 나라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은 우리의 1, 2위 무역 상대국이다. 우리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 미국은 12%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 의존도는 68.8%에 달할 정도로 높다. 우리는 중국에 부품과 중간재를 많이 수출한다. 지난해 대중(對中) 수출 가운데 중간재 비중이 78.9%에 달했다. 중국은 그 중간재로 완성품을 만들어 미국 등 해외에 수출한다. 미국이 중국산 상품 수입을 제한하면, 우리의 대중 중간재 수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중국의 주요 대미 수출품인 휴대전화·텔레비전에 중간재로 포함된 우리 반도체의 대중 수출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 편을 들 것이냐, 중국 편에 서서 무역 보복을 당할 것이냐'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EU)을 상대로 '중국의 관행을 WTO(세계무역기구)에 문제 제기하는 데 협력할 것' '중국의 무역 왜곡 정책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 등을 주문하면서 '반중(反中) 통상 동맹'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미국의 파상적인 무역 공세든, 중국의 제2 사드 보복이든 한국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 편에 서면 중국은 제2 사드(THAD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을 가할 가능성이 있고, 미국 손을 들지 않으면 트럼프 정부는 대규모 무역 보복을 할 수 있다"며 "G2(주요 2개국) 사이에 낀 진퇴양난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우리 앞에 떨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