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에 있는 화학제품 제조업체 S사는 올 1월 주당(週當)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했다. 직원 수가 100명이기 때문에 2020년부터 근로시간 단축 규정을 적용받지만 사원 복지와 정부 시책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공장 생산 직원들은 2조 2교대에서 3조 2교대로 근무 형태가 달라졌다. 작년까지는 40명의 생산 직원이 20명씩 2개 조로 12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일했지만 20명을 더 뽑아 1개 근무조를 늘린 것이다. 직원들은 4일 동안 하루 12시간씩 일한 뒤 2일 연속 휴무를 한다. 주당 근로시간은 예전 평균 77시간에서 52시간으로 대폭 줄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여가시간은 늘었지만 직원들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월급이 줄어 살림살이가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초과 근로가 많은 생산직이 더 타격을 받았다. 10년 차 직원 김모(39)씨의 경우 지난해까지 매달 535만원가량을 받았지만 올해부터는 월급이 150만원 이상 줄었다. 경영 환경을 감안해 노사 합의로 기본급을 낮춘 데다 근무시간이 한 달에 100시간 이상 줄면서 연장근로수당 등이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인 김씨는 "줄어든 월급에 맞춰 승용차도 경차로 바꾸고 보험도 하나 해약했다"고 말했다. 연봉이 8000만원에 달하던 20년 차 최모(50)씨도 올해 연봉이 6000만원 안팎으로 줄어든다. 최씨는 "20년을 주야로 살다가 이틀씩 쉬는 날이 생기니 처음에는 아내와 여행도 가고 좋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니 돈이 없어 못 가겠더라"고 말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직원을 20명이나 추가로 채용하다 보니 기존 인력들의 급여를 낮춰도 올해 전체 인건비는 작년보다 5억원 정도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회사 영업이익도 작년에 비해 반 토막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두고 중소기업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통과된 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이와 관련해 올라온 청원이 149건에 이른다. 일부 근로시간 단축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급여가 줄어드는 중소기업 재직자와 가족의 반대 목소리다.

이들은 "근로시간 단축은 서민 위한 법이 아니다. 생산직 근로자를 외면하는 법이며 가난이 대물림되는 하향 평준화 법률이다" "월급이 100만원 줄면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나"와 같은 불만을 쏟아냈다. 중소기업 근로자로 추정되는 한 네티즌은 이달 1일 '근로시간 규제 중단하라'는 청원서에서 "처자식 먹여 살리고 내 가족들 잘살게 만들려고 나는 힘들더라도 뼈 빠지게 일한다. (근로시간 규제) 철폐하라"고 주장했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 감소폭은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컸다. 종업원 수 300명 이상 기업은 월급 감소폭이 7.9%(41만7000원)였지만 중소기업(30~299명)은 12.3%(39만1000원)에 달했다. 중소기업은 기본급이 낮은 데다 휴일·야간 근무 등 시급제 수당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격차가 더 클 수도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서도 "기업 대상 설문조사의 특성상 초과 근로시간이 실제보다 적게 집계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기업들은 중소 제조업체 현실과는 달리 주 52시간을 넘는 초과 근로가 주당 6~7시간에 그친다고 답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면서 "중소기업의 이익 규모가 줄어들면 근로시간 단축의 고통이 배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