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지나치면 부족하니만 못하다는 말인데, 요즘 나오는 아파트 이름을 보면 딱 그렇다. 좋은 곳에 잘 지은 집이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온갖 좋은 뜻의 외국어를 가져다 붙이는데, 지나치다 보니 정체불명의 ‘외계어’가 돼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달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돼 ‘로또 아파트’로 불리는 경기 과천시 과천주공 2단지 ‘과천 위버필드(UBERFIELD)’도 그런 예다. 독일어로 ‘조망·전망’을 뜻하는 위버블릭(Überblick)과 ‘~보다 위쪽의, 상위의, 완전한’을 의미하는 위버(uber), ‘들판’을 뜻하는 필드(Field)의 합성어다. 조합과 시공사인 SK건설 롯데건설은 “‘당신만을 위한 과천의 프리미엄 아파트’라는 의미로, 대단지 프리미엄과 과천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누릴 수 있는 단지라는 뜻까지 담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작명이다.

조선일보DB

최근 단지명을 확정한 서울 양천구 신정뉴타운 2-1구역 ‘래미안 목동 아델리체(Adeliche)’는 그럴싸하게 들리긴 하지만 뜻 모를 단어다. ‘고귀한’이란 뜻의 스페인어 아델리오(Adelio)와 ‘귀족’, ‘품격’을 나타내는 독일어 아델(Adel), '소중히 하다'라는 뜻의 영어 체리쉬(Cherish)를 결합한, 무려 세 나라의 언어를 섞어 만든 이름이다. ‘품격 있는 사람들이 소중한 가족과 함께하는 고급 주거 단지’라는 뜻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하지만, 설명이 있어도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고 입지와도 큰 관련이 없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와 같이, 시공사 주택 브랜드와 지역명에 에듀나 에코, 파크 등 입지나 단지 특장점을 가장 잘 드러낸 간단한 펫네임을 붙이는게 단지 작명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외국어 단어를 얼토당토않게 조합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의 재건축 단지명인 ‘디에이치 클래스트(THE H Class+est)’는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최상급의 단지를 짓겠다는 뜻을 담아 지은 이름인데, 영어권 원어민이 보면 코웃음을 칠 작명이다. 최상급을 만들려면 형용사 뒤에 ‘~est’가 붙이는 기본 어법도 갖추지 못했다. 명사 ‘class’에 최상급 접미사를 억지로 붙이면서 우스운 모양새가 된 셈이다.

강동구 고덕주공3단지를 재건축해 짓는 ‘고덕 아르테온’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이름이다.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와 신을 상징하는 ‘테온(Theon)’의 조합으로 입주자의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정한 이름이라고 하는데, 막상 붙여 놓으면 아파트 이름으로 와닿지 않는 단어가 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 브랜드에 지역명을 붙이는 게 워낙 흔해지다 보니 이제는 독특하거나 세련됐다는 이미지를 주는 외국어 합성어를 선호하는 조합원들이 늘고 있다”면서 “컨소시엄 단지는 브랜드를 겹겹이 붙이면 단지명이 길어질 수 있어 별도의 합성어를 단지명으로 짓는 것이 유리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단지명은 아파트의 첫 이미지에 더해 입지와 브랜드, 상품 특성까지 담아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지만, 최근의 무분별하거나 과한 합성은 이런 취지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아파트가 자산상품으로서 가치를 갖다 보니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이를 높이기 위해 복잡한 조어를 붙이려 한다”면서 “단지 이름을 통한 차별화가 사라지고 있어, 입지나 특화설계 등 주거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단지를 차별화하는데 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