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체 펄어비스 김대일 의장은 8년 전 경기도 안양에 있는 오피스텔 원룸에서 직원 7명과 함께 창업했다.

김 의장은 직원들과 창업한 지 4년 동안 밤낮없이 게임 개발에만 매달렸다. PC 게임 '검은 사막'을 내놓고 게임에 사소한 오류만 발생해도 직원들과 함께 밤샘하기 일쑤였다. 김 의장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사업이 성공하지 않는다. 최고의 대우를 해줄 테니 매일 악착같이 달라붙어 게임의 품질을 높이자"고 말했다. 이 게임은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820만장이 팔리며 누적 판매액 4000억원을 돌파했다. 현재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조7000억원(코스닥 11위)이다. 창업 멤버들도 수백억원대 갑부(甲富) 대열에 올라섰다.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넷·게임·바이오 기업들도 펄어비스와 같은 성공 방정식을 갖고 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미국 혁신 기업의 창업자와 초기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창업 초기 직원들에게 '주 90시간을 즐겁게 일하자'고 말하고 본인도 그 룰을 따랐다. 국내에 있는 16만여 스타트업들도 이런 성공 사례를 뒤쫓고 있다. 현재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이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 후보로 꼽히는 송금앱 기업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와 창업 멤버들은 2013년 창업한 이후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숙식해가면서 일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2021년 7월부터 일률적으로 스타트업에도 적용되면 한국에서는 혁신 스타트업의 싹이 잘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스타트업들이 기존 대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스타트업의 대표는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창업자와 직원들의 열정이 가장 큰 동력"이라면서 "대기업과 똑같이 일하면서 어떻게 대기업을 이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글로벌 경쟁이 일상화된 IT(정보기술) 분야에서는 사실상 근무 시간 규제가 없는 미국, 중국 등 해외 벤처기업과도 경쟁해야 한다. 김창경 한양대 교수(과학기술정책학과)는 "스타트업 창업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개편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면서 "자본이 열악한 스타트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규제로 창업 열기가 얼어붙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