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분양가 규제 강화로 올해 분양 예정인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분양가 콧대를 내리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 산정에 압박을 가하면서 분양가 결정을 놓고 시공사와 조합원 간 줄다리기가 극심해지면서 고심도 깊어졌다. 신규 청약자들에겐 ‘로또 아파트’를 분양받을 기회일 수 있지만, 사업자 입장에선 여간 골치가 아니다.

용산구 한남동 외인아파트 부지에 들어서는 고급주택 ‘나인원한남’은 최근 분양가를 3.3㎡당 6360만원에서 5000만원 이하로 대폭 낮춰 분양승인을 재신청할 예정이다. 기존 최고가 분양인 성동구 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의 3.3㎡당 평균 분양가 4750만원과 비슷한 금액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크다.

시행사인 디에스한남은 고분양가 논란에 따른 HUG의 분양가 하락 요구를 받아들여 펜트하우스 가구수를 줄이는 등 설계까지 변경했다.

디에이치자이 개포 투시도.

다음달 이후 분양을 앞둔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도 분양가 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분양 보증이 3.3㎡당 4000만원 초반에 결정된다는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보고 있다.

이달부터 연말까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9개 단지가 분양될 예정이다. 건립 가구수 1만603가구 중 조합원 몫을 뺀 2999가구가 일반 분양 물량이다. 지난해 분양 실적(446가구)의 6배가 넘는다.

삼성물산은 다음달 말쯤 서초동에 ‘래미안 서초우성1차’를 분양한다. 현대건설은 오는 7월 반포동에 ‘삼호가든3차’를, 삼성물산은 삼성동에 ‘상아2차’를 8~9월쯤 선보일 예정이다. 이후 GS건설이 9월 방배동에 ‘방배경남’을, 10월 서초동에 ‘서초무지개’, 11월 개포동에 ‘개포주공4’를 분양할 계획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HUG의 분양가 압박이 심해지면서 강남권 단지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지만, 자율적으로 분양가를 정할 수 없고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갈수록 분양가 산정이 깐깐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했다.

분양가 압박에 밀린 단지들은 알아서 분양가를 내렸다.

현대건설·GS건설·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의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애초 평균 분양가를 3.3㎡당 4243만원으로 잠정 확정됐다가 지난해 개포택지개발지구에 공급됐던 ‘래미안 강남포레스트’ 분양가와 똑같은 3.3㎡당 4160만원으로 내렸다.

SK건설과 롯데건설 컨소시엄이 같은 날 분양하는 ‘과천 위버필드’는 분양가를 3.3㎡당 2955만원에 맞췄다. 지난해 1월 인근에서 공급된 ‘과천센트럴파크 푸르지오 써밋’의 분양가와 같은 수준이다. 같은 지역이더라도 기존에 공급됐던 단지보다 다소 높게 책정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HUG의 분양보증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분양가를 낮춘 것이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재건축 조합원들도 분양가가 낮아지는 것을 예상하긴 했지만 체감 규제가 더 큰 것 같다”면서 “분양 보증이 안 되면 분양이 미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분양가 인하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