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이 다시 후순위로 밀려난 것 같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 주관 제14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중견조선소 처리방안이 나온 직후 나온 해운업계 반응이다. 정부는 이날 성동조선해양·STX조선해양에 대한 처리 방안을 결정하면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빠른 시일 안에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시기는 정하지 않았다.

느긋한 정부와 달리 업계는 다급하다. 경쟁 선사들은 이미 정부 지원을 받은 뒤 2020년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발맞춰 대규모 발주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 6월 이후 중국 COSCO, 프랑스 CMA·CGM, 스위스 MSC, 덴마크 머스크, 대만 에버그린 등 5개 선사가 발주한 선박만 56척으로 94만6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수준이다. 이는 현대상선(33만TEU)만한 선사 3개 규모다.

현대상선도 2020년 IMO 환경규제를 재도약의 기회를 삼겠다고 선언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선박 발주를 진행하려고 해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언제 어떻게 지원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계획대로 2020년에 맞춰 친환경 선박을 확보하려면 늦어도 올해 상반기 안에 선박 발주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발표 예정이었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은 3월이 되도록 확정되지 못하고 미뤄지기만 하고 있다. 해운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Golden Time·사고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금쪽 같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대로 가면 현대상선마저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하루 빨리 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해야 한다. 해수부의 업계 지원 계획이 이달 안으로 확정되지 않으면, 6월 지방선거가 지날 때까지 지지부진한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선사들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확정돼야 구체적인 중장기 발전방향이나 선박 발주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정부 계획이 늦어질수록 선사들은 선박 발주, 화주 확보 등에서 불리하다. 최근 글로벌 선사들의 선박 발주가 쏟아지면서 선박 가격은 조금씩 오르는 추세다. 이에 조선소 도크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선사에게 선박 발주는 운영 계획을 세우는 첫 걸음이다. 선박이 있어야 노선을 짜고, 화주를 상대로 영업할 수 있다. 선박 확보 계획이 정해지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금호타이어 매각, STX조선해양·성동조선해양 구조조정 등 굵직한 다른 이슈가 연이어 발생하자 해운업에 대한 관심이 한진해운 사태 이전처럼 줄어드는 모양새다.

이러니 한진해운 사태를 겪고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도 한진해운 사태로 피해를 입은 글로벌 화주들은 해운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 의지를 의심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현대상선, SM상선이 아닌 어떤 선사라도 한 곳만 더 무너지게 된다면, 세계 해운업계에서 한국 해운이 설 자리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