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전라북도 군산시 오식도동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180만㎡(약 55만평)에 달하는 이 곳은 적막감이 가득했다.

군산조선소는 GM군산공장보다 7개월여 앞선 작년 7월 가동이 중단됐다. 이 곳은 조선 업황이 한창 좋았던 2008년 건립됐다. 사업비 1조2000억원이 투입된 초대형 조선소로 25만톤급 선박 4척을 한꺼번에 건조할 수 있는 규모다.

광활한 조선소 주변은 인적이 끊겨있었다. 정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북문과 서문도 마찬가지였다. 경비원 한 명이 외롭게 동문을 지키며 혹시 모를 외부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다. 오가는 차량은 찾아보기 어렵고, 출퇴근 차량으로 가득했던 주차장은 텅 비었다. 야드를 누볐던 장비들은 녹이 슬었고, 조선소 주변은 유령도시처럼 변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정문. 작년 7월부터 가동이 중단된 후 주변 인적이 끊겼다.

‘기술의 현대, 세계의 현대.’ 공장의 한쪽 벽면을 커다랗게 장식한 글귀가 나타나자 동행한 택시기사 김모씨가 냉소(冷笑)를 드러냈다.

“주변 협력업체, 이 곳만을 바라보고 지은 빌라 건물주들, 음식점 다 망했어요. 게다가 최근에 GM공장까지 폐쇄됐잖아요. 연타를 맞은 군산 시민 모두 공황상태죠.”

그는 “아침 출근길에 허겁지겁 택시를 잡거나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GM 군산공장 폐쇄 후에는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사라진 군산...식당·슈퍼 등 자영업자 폐업 줄이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이 중단되면서 약 5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과 함께 주변 음식점, 편의점, 빵집, 커피숍도 같이 문을 닫았다. 그나마 일부 음식점과 병원, 약국 등이 문을 열었지만 금요일 오후에도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빌라 곳곳은 ‘풀옵션 임대, 소개비 없음, 인터넷 무료’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이 곳은 2008년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들어오면서 지어진 빌라들이다. 하지만 조선소 가동이 중단되자 원룸 공실률은 급격히 늘었다. 공인중개사 정모씨는 “한 건물에 2~3명이 살고 있을 정도로 대부분 공실”이라고 말했다.

경매에 나온 공장들도 늘고 있다. 풍력터빈 블레이드를 제조하던 A사 군산공장(3000평)은 100억원이 넘는 감정가를 받았지만, 1년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입찰액도 30억원대로 떨어졌다.

인적 없는 오식도동 빌라촌

군산은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이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들 두 기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했다. 하지만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이어 GM군산공장까지 폐쇄되자 군산 지역 민심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GM 군산공장은 1만2000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고 가족까지 포함하면 4만 명이 거리로 나돌아야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했다.

대규모 실업사태가 우려되는 근로자들이 소비를 멈추면서 군산 상권과 부동산 시장은 벼랑 끝에 몰렸고, 취업이 어려워진 청년층의 근심도 커져가고 있었다.

◇GM 공장폐쇄 후 출퇴근 풍경 사라져...고용 지원 턱없이 부족

군산 곳곳에는 GM의 공장폐쇄를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한국GM에 근무하던 전 직원은 "GM은 자동차업계 투자은행(IB)으로 불린다"며 "오래 전 군산공장 생산라인을 베껴 해외로 다 옮겼고 현장직원 빵·우유까지 중단하면서 한국 철수 계획을 짜왔다"고 말했다.

군산 곳곳에 걸려있는 플래카드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한 지역상인은 “GM과 현대중공업에 완전히 의존적이었기 때문에 지역의 자생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데 이 두곳이 문을 닫으면서 먹고 살수 있는 기반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지역 상인들은 GM의 월급 지급이 중단되는 6월부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군산 내 가장 번화가로 꼽히는 수송동 한 건물 1층 커피숍은 문을 닫은 후 6개월 지난 지금까지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권리금도 없앴지만 문의조차 없다. 한 고깃집 사장은 “수송동 먹자골목 80% 이상이 임대물건으로 나왔다”며 “길에 사람이 없어서 더이상 영업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6개월째 문닫은 수송동 한 커피전문점. 권리금 없음 표시가 붙어있다.

침체된 군산 지역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일부 업체들이 지원에 나섰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23년만에 전라북도 지역의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일자리를 잃은 지역민이 창업하면 가맹비용의 40%인 약 3160만원을 지원해 준다. 총 50명에 약 16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롯데백화점은 오는 4월 말 전북 군산에 오픈하는 복합쇼핑몰 근무인원 중 70%가량인 400여명을 현지인으로 채용한다. 이는 평균적인 타 지역 쇼핑몰 현지채용 비율인 30∼40%를 2배 가량 웃도는 것이다. 전라북도교육청은 GM군산공장과 협력업체에 근무하다 실직한 근로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수업료와 교복비 등을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군산을 이르면 이달 내에 산업위기특별대응지역 및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면 고용보험법 적용대상이 아닌 사업주도 지원받을 수 있다. 창업자금과 진흥기금 지원도 요청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지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근로자를 비롯한 자영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점 사장 전모씨는 “뭘 지원한다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사실 이런 고용불안 문제는 작년 군산조선소 가동중단 이전부터 나왔는데 정부가 손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GM과 대립하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택시기사 박모씨는 “1년 넘게 파업하는데 내가 주인이라도 공장 문을 닫을 것”이라며 “차라리 GM이고 노조고 모두 군산을 떠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새 주인이 나타나든가, 정부의 지원폭이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