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2016년 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무너진 유럽 노선 복구에 나섰지만, 해운업계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내 해운 대표주자가 된 만큼 사라진 원양 노선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무리한 선박 투입이 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4월 8일부터 45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0척을 단독으로 투입해 부산과 로테르담, 함부르크 등을 잇는 AEX(Asia Europe Express) 서비스를 개시한다.

광양항 한국국제터미널(KIT)에 접안한 ‘현대오클랜드’호가 하역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 국적 선사가 유럽에 직접 배를 투입하는 것은 2년 만이다. 2016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각각 해운 얼라이언스(동맹)를 통해 유럽 노선과 미주 동부 노선에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이후 파산하고 현대상선은 ‘2M’ 얼라이언스 협력 과정에서 원양 노선을 없앴다. 2M은 해운업계 1위인 덴마크의 머스크(Maersk)와 2위인 스위스의 MSC를 말한다.

국내 수출입기업들은 유럽이나 미주 동부로 가는 국적 선사의 원양 서비스가 사라지면서 큰 불편을 겪었다. 국내 화주들은 외국적 선사를 이용하다보면 선적 화물 무게를 지나치게 제한받거나 성수기엔 예약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린다고 토로한다. 국내 화주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국적 선사의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현대상선은 향후 유럽 노선에 진출할 때를 대비해 운영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AEX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2020년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에 맞춰 2만2000TEU급 초대형 친환경 선박 발주를 검토 중인데, 이 때 확보한 선박을 유럽 노선에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 지역 화주를 미리 확보해뒀다가 2만2000TEU급 선박을 운영할 때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또 현대상선은 2M으로부터 빌려 쓰는 선복(적재용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현대상선은 2017년 4월부터 유럽·미주 동안 노선에서 2M과 선복 매입 형태로 전략적 협력을 진행 중이다. 선복 매입은 다른 선사가 운영하는 배의 빈 공간을 필요한 만큼만 사서 쓰는 방식이다. 현재 2M은 현대상선이 필요한 물량 만큼 충분히 공간을 내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AEX 서비스로 현대상선의 적자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자적으로 운영하게 될 4500TEU 규모의 선박에 화물을 어느 정도까지 채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대상선은 독자 운영하는 선박 뿐만 아니라 기존에 2M으로부터 매입해 쓰던 선박에도 화물을 채워넣어야 한다. 현대상선이 현재 2M으로부터 매입하는 선복이 1주당 6000~7000TEU 규모인데, AEX 서비스를 개시하면 여기에 추가로 4000TEU 규모 화물이 필요하다.

해운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단기간에 화물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만TEU 선박이 1만3000TEU 선박으로 확대될 경우 화물을 확보하는데만 1년 이상 걸리는데, 6000~7000TEU에서 1만1000TEU를 확보하는데도 비슷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선박 크기가 사상 최대 규모인 2만2000TEU급으로 바뀔 경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2만TEU에 가까운 초대형 선박이 몰리는 유럽 노선에서 현대상선의 4500TEU급 선박이 어느 정도 비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화물 구성이나 하역비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통상적으로 1TEU를 옮기는데 들어가는 단위당 비용은 5000TEU급 선박이 2만TEU급 선박보다 두 배 가량 비싸다. 배를 운영하는 선원 숫자나 쓰는 유류비는 비슷한데, 큰 선박일수록 한 번에 많은 화물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2만TEU는 2013년부터 등장한 선박으로 과거 건조된 4500TEU보다 연료 효율성 등이 좋다.

유럽은 초대형 고효율 선박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글로벌 선사들은 초대형 선박을 투입할 수 없는 미주 서안이나 미주 동안 대신 유럽에 우선적으로 초대형 선박을 투입하고 있다. 유럽 노선 평균 선박 크기는 2008년 7200TEU에서 2018년 1만5250TEU로 커지면서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해운분석기관 알파라이너는 현대상선의 AEX 노선에 대해 상대적으로 작은 선박이 투입돼 비용 부담이 예상된다며 ‘도박(Gamble)’이라고 평가했다. 노선을 운영할 수록 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상선은 작년에도 연간 406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7년 연속 적자를 냈다. 2016년(-8333억원)보다 적자 폭을 크게 줄였지만, 여전히 막대한 손실을 기록 중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AEX 서비스는 2020년 이후를 보고 시작한 것으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는 것은 아니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 이익을 내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