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을 실제 거래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원장(元帳·ledger) 인증절차에 따른 처리 지연과 사용자 인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 블록체인 전문가들이 중소기업이 개발한 물리적 복제 방지 기능 기술(PUF·Physical Unclonable Function) 칩을 이용해 개인간 거래가 실시간으로 완료되도록하는 새로운 기반 기술을 내놨다.

기술을 발표한 ICTK는 가장 해결이 어려웠던 처리 지연 문제를 하드웨어 도입으로 해결해 세계 기술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다. 블록체인 전문가인 한호현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중앙 화폐의 디지털화에도 적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8일 ICTK는 서울 강남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퓨어체인’ 발표회를 열었다.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PUF 칩 도입으로 보안성을 유지하면서도 3자 개입 없이 오프라인으로도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든 기반 기술이다.

왼쪽부터 한호현 경희대 교수, 유승삼 ICTK 대표, 한동수 카이스트 교수, 이정원 ICTK 부대표가 퓨어체인 기술 발표 후 질의응답 중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오프라인 거래에 적용하려면 ▲원장 인증 절차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거래 주체 신원을 명확히 하고 ▲동시다발적 거래와 다자간 거래도 지연 없이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블록체인 기술 수준은 네트워크 상에서 참가자 과반의 거래 인증 획득 시간이 필요해 실시간 거래에 적용하기 어렵다.

특히 네트워크 참여자가 원장 인증을 하는 방식은 블록체인이 거의 해킹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다. 참가자 전원이 거래 장부를 가지고 있어 일부 변조를 통해서는 거래 위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증을 위한 시간이 발생해 거래 지연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거래금을 이중 지급 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리 복제 방지 기능(PUF) 반도체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ICTK가 한호현 경희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한동수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에피토미CL과 손잡았다.

ICTK는 PUF 반도체를 대량 생산 하는 국내 중소 업체다. PUF는 소프트웨어(SW) 해킹 수준이 높아지자 기기별로 탈취가 어려운 인공 지문이나 홍채를 이식해주는 칩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칩 내부에 보안 저장소, 암호화와 복호화를 위한 보안키를 보유하고 있다. 기기에 칩을 탑재하면 보안키 복제가 불가능에 가까워 해킹에 안전하다.

ICTK가 학계와 함께 발표한 ‘퓨어체인’ 이론은 이 PUF 보안칩과 블록체인을 혼합한 신기술이다. 블록체인 특징인 보안성은 담보하면서 오프라인과 온라인 상관없이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게 한다. PUF 칩에 담긴 사용자 정보(개인정보와 보유 화폐)와 암호화한 해시값 정보가 각각 원장 역할을 대신한다.

블록체인은 거래가 발생할 경우 장부에 거래 내용을 담고 이를 암호화한 후 네트워크 망 상에서 참여자 인증을 받는다. 참가자 중 과반이 합의해 변경된 원장 내용을 인증하면 거래가 완료된다.

퓨어체인은 인증이 없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거래가 되도록 칩 내부 보안 영역에 거래 정보를 담을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거래 정보가 암호화돼 오프라인 칩에 담겨 있다. 칩 안에서 사용자 정보와 보유 자산 등을 담보해 줘 거래 상대방의 신뢰도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 A가 퓨어 체인 시스템 기반 카드나 전자 지갑과 같은 기기에 보유한 금액을 또 다른 사용자 B에게 보내면, A가 가진 기기에서는 거래 내용을 원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보안 영역에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B 역시 거래 내용을 업데이트한다. 하드웨어 내부에 원장이 담긴 형태여서 거래 내용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퓨어체인 기술 도식. 사용자 1이 돈을 보낼 경우 원장(ledger) 역할을 하는 보안 영역(secure area)에서 거래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 사용자 애플리케이션 영역에서는 개인 정보와 보유 자산 정보 등이 담겨있어 거래 당사자 신뢰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때 보안 영역에 담긴 전체 거래 내용은 개별 사용자가 모두 보유하고 있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오프라인 상태일 때도 거래 내용의 해시값 인증이 가능하다. 기관이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온라인 상태일 때 전체 거래 내용을 암호화해 업데이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개자 역할을 하는 밴(VAN)사, 카드사, 환전소, 중개소 등이 없이도 개인 신용과 자산 등을 확인할 수 있어 별도 확인 절차 없이 거래가 완료된다. 편의점과 같은 상점은 포스기를 비롯한 결제 시스템을 단순화 하거나 없앨 수 있고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신뢰도를 담보할 중개 역할 기관이 모두 생략될 수 있다.

한호현 교수는 “PUF를 통해 거래 정보나 사용자 정보 탈취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블록체인에서 구현이 어려웠던 오프라인 거래와 실시간 거래 확인이 가능해지게 되고 다자간 거래나 동시다발적 대량 거래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며 “하드웨어 형태가 아닌 클라우드 형태로도 사용할 수 있어 중앙 화폐는 물론 대용량 정보 교환에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승삼 ICTK 대표는 “4월 퓨어체인용 보안칩을 출시하고 5월부터는 미국 등에 기술을 선보일 계획”이라며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합의 지연, 처리속도 지연, 사용자 인증 문제를 PUF 칩으로 해결하는 신기술로 세계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