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보호무역주의 촉발 시 세계 교역량 축소 불가피"
"경제·안보 일체감 강화로 관세 폭탄 피할 묘안 마련해야"

“트럼프발 글로벌 통상전쟁의 1단계가 시작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관세 부과 조치를 철회할 가능성은 낮다.”(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

“새로운 품목에 대한 무역제재가 또 나온다면 많은 국가들이 방어적인 태세로 전환하면서 글로벌 교역 규모가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서정민 숭실대 교수)

“행정명령이 발효될 때까지 시간이 남아있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진행 중이고 북핵 등 핵심적인 안보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면서 최종 관세 부과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

“WTO(세계무역기구) 등 국제기구를 통한 분쟁해결 노력과 함께 피해국 간 공동대응에 나서야 한다. 주변국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외교적 노력을 통해 추가적인 통상마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에 대해 국내 통상정책 전문가들은 ‘트럼프발(發) 글로벌 무역전쟁’의 서막이 올랐다고 평가했다. 수출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한국 경제로서는 글로벌 통상전쟁 발발로 인한 교역량 감소는 성장여력에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는 사안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발 무역전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한국 정부가 EU(유럽연합) 등과 공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 공조를 통해 글로벌 통상전쟁이 이제 막 살아나기 시작한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미국내 철강 수요 산업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이 너무 앞장서 나가면 보복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협상을 통해 일부 동맹국을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시켜 줄 수 있다는 언급한 만큼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대(對)미 접촉을 통해 관세 대상에서 빠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경제 뿐 아니라 안보 문제에 있어서 일체감을 강화하는 등의 전략도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트럼프發 통상전쟁 서막 올랐다…확전되면 세계 교역량 축소”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조치와 관련, 수출에 미치는 악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글로벌 무역전쟁이 촉발되면 한국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가 전방위적인 무역 전쟁으로 확전될 경우 세계 교역량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왼쪽부터)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서정민 숭실대 글로벌통상학부 교수

국내 통상학계의 원로인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서울대 명예교수·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EU가 미국을 상대로 보복 조치에 나서고 트럼프 행정부가 맞대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며 “이 경우 글로벌 교역이 줄어들고 회복세에 접어든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EU가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나 관세 부과 등 대응 조치에 나선다면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원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관세 부과 조치를 철회할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는 이번 관세부과 조치로 러스트 벨트(rust belt·탈공업화로 경제가 무너진 미국 중동부지역) 노동자들 편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며 “반대로 관세부과 조치로 피해를 입는 기업, 소비자들은 흩어져 있어 응집된 정치적 압력을 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도 “이번에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된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무역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면서 “EU는 유럽으로 미국산 제품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제품이 유럽으로 들어갈 경로도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미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와 이에 대한 맞대응이 엉키면서 전 세계적으로 교역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정민 숭실대 글로벌통상학부 교수는 “단기적으로 볼 때는 당장 전세계 교역 규모가 줄어드는 피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지만 새로운 품목에 대한 무역제재가 나올 경우 많은 국가들이 방어적인 태세로 전환하면서 급격히 교역 규모가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 “최종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적극적으로 접촉해야"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이후 관세가 부과되기까지 15일가량 남아있는 만큼 철강 관세 부가 대상에서 빠질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적극적으로 접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9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백운규 장관 주재로 민관합동 대책회의를 열고 “서명 후 15일 후인 23일(현지시각)부터 실제 관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업체들이 피해를 보기 이전에 미국이 한국을 관세 부과 대상 국가에서 면제할 수 있도록 USTR과의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철 본부장은 “행정명령이 발효될 때까지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하고 있다는 점과 북핵 등 핵심적인 안보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면서 최종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미국 내부에서도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는 흐름이 있는 만큼 이번 조치의 부당성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필요하면 다른 나라와의 국제공조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원 이사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 캐나다,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자본, 인력 교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면서 도매금으로 제재 대상에 포함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한국 경제는 대미 수출 관계에서 중국과 차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태호 전 본부장은 “캐나다와 멕시코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된 것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수입제한 조치에서 의무 면제 조항이 있기 때문”이라며 “지난 2000년 강관(line pipe)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발동 당시에도 캐나다, 멕시코는 제외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관세 부과 대상이 된 것은 한미 동맹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빼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며 다소 신중한 견해를 나타냈다.

다만 그는 “이번 조치는 철강 등 산업 필수 소재에 대한 관세라서 미국 경제 내에서 불만을 가진 이해당사자들이 많은 상황”이라며 “이들의 불만이 언론을 통해 표출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이 지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국 겨냥한 제재 품목 더 늘 것...정부 일관적인 통상대응 시스템 구축해야”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가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중국을 겨냥한 만큼 제재 품목이 더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박태호 전 본부장은 “철강, 알루미늄 관세는 중국을 의식한 조치인데, 올 상반기 중국의 지적재산권 위반에 대해 미국이 보복에 나서면서 대중 무역 문제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통상 대응 매뉴얼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정민 교수는 “앞으로 통상 분야에서 더 많은 이슈들이 나올 텐데, 그때마다 품목마다 따로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지금처럼 개별 사안에 따라 대응 부처와 대응 양식이 달라지는 것을 지양하고 정부 내 일관적이고 통일성 있는 통상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주원 이사는 “WTO 등 국제기구를 통한 분쟁해결 노력과 동시에 피해국 간 공동대응을 통해 협상을 키워야 한다”면서 “주변국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국이 추가적인 국제 통상마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정민 교수는 “국제 공조 전략을 추진해야 하지만 한국이 다른 나라들의 대응보다 너무 앞서 나가 선봉장 역할을 해서도 안된다”면서 “한국을 하나의 본보기로 삼아 강력한 제재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은 국제 공조를 통해 다른 나라의 대응 강도를 파악하고, 한국이 지나치게 앞서나가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