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개발(R&D) 사업 성과에 대해 매년 실시했던 연차평가가 폐지된다. 기술이나 시장의 환경 변화로 진행중인 연구의 필요성이 없어진 경우 연구비 환수와 같은 제재 없이 연구자가 자발적으로 연구를 중단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8일 이낙연 총리 주재로 서울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제3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혁신성장을 위한 국가 R&D 분야 규제혁파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 R&D 참여 연구자의 연구 몰입 환경을 조성하고 R&D 지원시스템을 혁신해 정부 R&D 분야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이날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의견 수렴과 과제 발굴을 거쳐 ‘(가칭) 국가연구개발특별법’ 입법을 추진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서울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국가 R&D 분야 규제혁파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R&D 프로세스 규제 개선은 연차평가 폐지다. 지금까지 2년 이상 소요되는 정부 R&D 프로젝트는 매년 성과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렇다 할 성과가 아니어도 영향력이 크지 않은 해외 저널에 논문을 투고해 당해년도 성과로 인정받으려는 경우가 많았다. 연차평가를 폐지해 이같은 폐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진행중이던 연구개발 사업이더라도 기술이나 시장 환경이 바뀔 경우 제재 없이 연구자가 자발적으로 중단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그동안 정부 R&D 연구자가 환경 변화로 연구를 중단하려면 지원받았던 연구비까지 모두 반납해야 했다. 중단 사유가 타당할 경우 이같은 연구비 환수 등 제재 없이 스스로 연구를 중단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취지다.

연구와 행정지원 기능 분리도 추진된다. 연구자들에게 많은 부담이 되고 있는 연구비 관리·정산, 물품 구매 등 행정업무는 행정지원 전담인력을 배치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임대식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연구자들이 연구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행정 업무를 지원하는 전담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라며 “연구관리에 대한 책임은 연구자보다는 학교와 기관이 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R&D 도중 발생한 자산 손실에 대해 연구자 비리나 고의적인 중과실이 아닌 경우 연구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와 ‘불성실 연구수행’ 평가에 대한 이의 신청 및 연구자 소명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도 시범 도입될 예정이다. 이밖에 부처별로 적용됐던 연구비 사용 기준과 연구비 관리 시스템을 통합하고 연구비 사용 기준을 유형화해 적용할 계획이다.

임대식 본부장은 “논의된 방안 전체 틀에서 규정 개정으로 가능한 방안은 올해 안에 개정하고 적용할 수 있겠지만 가칭 국가연구개발특별법에 담기는 내용이라면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며 “가능한 한 올해 안에 입법 과정 거쳐서 내년에는 시범 적용 등 실제로 연구 현장이 바뀔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8일 오후 KIST를 방문해 연구성과를 살펴보고 연구자와 간담회를 가진 이낙연 총리는 “창의적 연구 활성화를 위해 R&D 시스템을 혁신하고 규제를 혁파할 것”이라며 “치매 등 고령화 시대 뇌질환 정복을 위한 연구 등을 통해 국민의 건강 증진, 삶의 질 제고를 위해 지속적으로 역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