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낡은 사무실과 손님이 드문 썰렁한 가게로 채워졌던 서울 종각역 인근 '종로타워'는 요즘 유동인구로 북적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이 들어섰고, 지하에는 국내 최고(最古) 역사의 서점인 '종로서적'이 재개장했다. 식당가에는 미슐랭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 등 유명 맛집들이 문을 열었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의 부동산 펀드가 건물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명동의 대형 쇼핑몰 '눈스퀘어', 청계천변 '시그니처타워' 등도 이지스자산운용의 펀드가 소유한 서울의 유명 빌딩이다. 조갑주 이지스자산운용 경영총괄부문 대표는 "상징성이 있거나 입지가 뛰어난 건물도 안에 있는 임차인이 누구냐에 따라 건물의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며 "국내 최대, 최초라는 상징성을 가진 매장이나 유명 기업을 유치해 독창적인 '스토리'를 입히면 건물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고 말했다.

조갑주 이지스자산운용 대표는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전문가들이 ‘가치가 높아질 부동산’을 선정해 만든 부동산 펀드의 인기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우리나라 부동산 자산운용 1세대로 통한다. 삼성생명서비스·현대건설에서 약 7년간 부동산 자산관리 업무를 맡았던 그는 2001년 국내 최초의 부동산 자산운용사였던 코람코자산신탁의 투자운용본부장을 맡아 부동산 간접투자에 발을 들였다. 그는 "저금리와 고령화,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은행에 돈을 맡기거나 아파트·상가 등에 직접 투자하는 수요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부동산 간접 투자가 생소하지만, 조만간 부동산 펀드가 각광 받는 때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빌딩이나 호텔, 유통·물류시설 등에 투자해 거둔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당해주는 부동산 펀드를 전문으로 한다. 국민연금·보험사·우체국·공제회 등 대형 기관이나 개인이 특정 건물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펀드에 투자하고, 해당 건물에서 나온 임대료와 매매 차익 등을 배당받는 구조이다. 2010년 자본금 25억원으로 시작한 이지스자산운용은 현재 128개, 19조5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순자산만 9조6650억원으로 국내 부동산 자산운용사 중 가장 크다.

"투자는 '전문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같은 부동산이라도 지역과 상품에 따라 수익률이 현저히 달라지기 때문이죠."

이지스자산운용이 지난 5년간 호텔·백화점·물류창고 등 실물 자산을 대상으로 운용한 펀드 48개의 평균 수익률은 6.2%이다.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6일 기준 1.41%)의 4배가 넘는다. 여기에 매각 차익까지 더하면 수익률은 더 높아진다. 조 대표는 "지금까지는 기관의 투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노후 준비를 걱정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부동산 펀드에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며 "우리 회사도 올해 조직을 8개 부문으로 개편하고, 부문별 대표를 세워 전문성을 더욱 강화했다"고 말했다.

'여유 자금이 많은 자산가라면 직접 건물을 사서 관리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조 대표는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부동산 펀드는 단순히 건물을 매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건물 위치와 용도에 따른 성장 가능성, 법률·재무 실사는 물론 최적의 임차인을 선정·관리해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종합 부동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펀드의 핵심 역시 누구나 아는 '좋은 건물'을 사는 게 아니라 낡았어도 미래 가치가 높은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건물을 사들여 소규모 창업자나 젊은 요리사들이 수년간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상업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권리금이나 보증금을 받지 않고, 임대료 상승 폭은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조 대표는 "많은 건물주가 장사가 잘되는 가게들의 임대료를 높여 수익률을 올리려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건물의 가치는 매장, 시설,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장사가 잘되고 인기 있는 임차인일수록 오랫동안 건물에 붙잡아 두는 게 이득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