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이달 5억원에 전세 계약됐다. 1월에는 전세 실거래가가 5억5000만원이었다. 은마아파트처럼 '학군 수요'가 많은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85㎡도 최근 10억9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루어져 연초 시세보다 3000만원이 내렸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세입자 모시기'에 나선 집주인 얘기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집값이 지난해 1억~2억원 올라서 어깨에 힘을 줬는데, 전세 계약 갱신 때 세입자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집주인은 "2년 전보다 수천만원 내린 가격에 계약하자면서 도배와 화장실 수리까지 요구하는 세입자도 있다"고 적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는 2달 만에 전세 실거래가가 5000만원(84㎡ 기준)가량 떨어졌다. 강남권 평균 전세금도 4주 연속 내리고 있다.

이사 수요가 많은 봄 성수기를 맞았지만, 서울 전세 시장이 썰렁하다. 최근 서울 집값 급등의 진앙(震央)으로 지목된 강남 4구를 비롯해 아파트 전세금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권 전세금 한 달째 하락

지난달 26일 한국감정원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금은 1주일 전보다 0.02% 내려 2주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서울의 주간 아파트 전세금이 내린 것은 2014년 6월 이후 3년 8개월 만이다. 서울 전역에서 서초구(-0.3%)의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서초구를 비롯해 강남·송파·강동 등 '강남 4구' 아파트 전세금은 4주째 내리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아파트 전세 시장은 매매 시장과 마찬가지로 서울과 지방 양극화가 심했다. 올해 2월 기준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금은 2년 전보다 1.58% 올랐지만, 서울은 4.82% 상승했다. 대구(-2.85%), 울산(-0.96%), 충북(-0.5%), 충남(-2.67%), 경북(-4.25%), 경남(-3. 33%) 등의 전세금이 약세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서울만 '나 홀로 호황'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서울도 아파트 전세금이 내림세로 돌아섰다.

연초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들썩이는 상황에서 전세금만 내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도 낮아졌다. KB국민은행은 2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이 68.5%로 2015년 5월(68.8%)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입주 물량 증가에 '세입자 모시기'

전문가들은 새 입주 아파트 증가 등 수도권에 아파트 공급이 늘어난 것이 서울 전세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경기도에 입주 예정인 아파트는 16만1500여 가구로, 작년(12만9428 가구)보다 3만3000여 가구 늘었다. 서울은 올 하반기에 입주하는 아파트가 많다. 작년보다 27% 늘어난 3만4900여 가구가 대기 중이다. 서울에 몰리던 전세 수요가 수도권 전역으로 분산되면서 전세 수요자로선 좀 더 싼 전셋집을 고를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최근 아파트값 상승 기대감에 내 집 마련에 나선 사람도 늘면서 전세 수요가 줄어든 것도 전세금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세 시장 침체로 대단지 아파트에선 완공 전부터 세입자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오는 12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입주하는 9510가구 규모의 '송파헬리오시티'는 입주 10개월 전인 지난달부터 전세 물건이 나오고 있다. 송파구의 한 공인 중개사는 "통상 새 아파트 전세 물량은 입주 6개월 전쯤부터 나오는데, 전세금이 더 떨어지기 전에 계약하고 싶은 집주인들이 서둘러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마저 전세 경기가 꺾이면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생한 '역(逆)전세난'이 수도권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 보증금을 대신 돌려주는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가입 건수는 6420건, 보증액 1조4322억원으로 1년 전의 2배 수준으로 늘었다.

◇갭 투자자 비상… 집값에 영향 미칠 듯

서울 아파트 전세금이 내리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들인 갭(gap) 투자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전세금이 계속 내리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때 자금이 더 필요하다. 전세 물량이 늘어난 상황이라 새로운 세입자 구하기도 쉽지 않다. 금리까지 오르면 갭 투자자들이 아파트를 급매로 내놓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와 공급 물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전세 시장의 침체가 계속 진행되면 매매 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전세 시세가 매매보다 1분기 정도 먼저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며 "서울 아파트값 상승을 이끌었던 강남권의 전세금 내림세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