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하 산은)과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GM 실사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체결한다.

이 확약서에는 실사 과정에서 GM이 자료 제공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만약 산은의 자금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 귀책사유는 GM에 있다는 문구가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이 한국GM에 대한 자금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부실 규명을 위한 투명한 실사에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이 GM에 있다는 일종의 담보장치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산은은 한국GM의 2대주주(지분 17.02%)다.

◇ “한국GM 속살 파헤칠 기회”

배리 엥글(오른쪽) GM 총괄 부사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각 정당의 한국GM 대책 TF 관계자와 면담하기 전에 물을 마시고 있다. 왼쪽은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22일 정부 및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산은과 GM은 실무진 협의를 통해 'GM이 산은의 한국GM 실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확약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확약서는 정작 실사에 들어갔을 때 GM이 그동안 보인 행태처럼 자료를 제공하지 않거나 협조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담보장치"라며 "일반적인 경우 실사는 구속력이 없지만 이번 한국GM 실사에는 구속력과 강제력을 일정 부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GM이 확약서 체결에 동의한 것은 이번 실사가 한국GM의 부실 원인 규명 차원을 넘어 1조원 이상의 자금지원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산은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GM은 부평, 창원 공장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산은에 5000억~7000억원 가량의 증자 참여를 요청했다. 또 GM이 한국GM에 빌려준 대출금 중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7000억원에 대해서도 산은이 대출 형식으로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확약서에는 특히 ‘부실원인을 규명하지 못해 산은이 한국GM에 자금지원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 그 귀책사유는 GM 및 한국GM에 있다’는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자동차업계에서는 한국GM의 부실 원인으로 극심한 노사 갈등뿐 아니라 과도한 연구개발(R&D) 비용 부과, 값비싼 이전가격책정 등 GM 본사와의 불공정 거래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번 실사에서 그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우리 측의 협상력은 이전보다 커질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확약서는 향후 GM·한국GM과 산업은행·정부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에서도 우리 측에 유리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GM은 그동안 2대주주인 산은의 각종 자료 요구에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지난해 삼일회계법인이 산은의 주주감사권을 행사하며 자료를 요구했지만 대부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제공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실사는 한국GM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GM과의 각종 불공정 거래를 끊어야 한다는 우리 정부와 산업은행 주장의 근거와 명분이 될 수 있다"며 "이번 실사가 투명하게 진행되면 산은의 자금지원 방향도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흐를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산은 "GM은 협상의 귀재, 끌려다니지 않을 것"

지난 21일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이동걸 산은 회장과 만나 산은의 요구조건을 큰 틀에서 수용했다.

이날 면담에서 이 회장은 엥글 사장에게 ▲흑자전환 방안 등 경영개선 대책 및 장기발전계획 수립 ▲실사 과정에서 분기실적·손실분석 등 재무실적 공개 ▲차입금 금리 인하와 본사관리 비용 분담금 면제 ▲장기경영계획 제출 및 산업은행과 협의 ▲재무구조 악화에 따른 개선조치 ▲한국 GM 역할 확대를 위한 GM본사의 협력방안 제시 ▲주주감사 업무 수행의 실질화 방안 제시 및 확약 ▲주주와의 신뢰관계 회복 방안 등의 자금지원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엥글 사장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앞서 GM은 28억 달러 규모의 한국GM에 대한 신규 투자와 27억 달러 규모의 기존 차입금의 출자전환 계획을 우리 정부에 전달하면서 산은도 지분 비율 대로 증자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산은이 보유 지분대로 증자에 참여하면 많게는 700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그 사이 GM은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했고 우리 측의 결정에 따라 부평과 창원공장도 연달아 폐쇄할 수 있다며 긴장감을 조성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GM은 협상의 귀재"라며 "엥글 사장이 한국에 오자마자 국회를 찾은 것은 한국GM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일자리 문제에 민감하다는 것을 GM측도 알고 있고 GM이 협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맞다"며 "다만, 우리 역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협상에 임할 것이며 끌려다니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