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본사는 20일(현지 시각) 미국 캔자스주(州) 캔자스시티 페어팩스 공장에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캐딜락 XT4'를 생산하기 위해 2억6500만달러(약 2852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 공장은 2200여 명의 근로자가 중형 세단 '쉐보레 말리부'를 생산해왔다. 제럴드 존슨 GM 부사장은 "품질과 고객에 대한 페어팩스 공장의 헌신을 높이 평가해 신규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GM의 이러한 결정은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시장 전면 철수까지 저울질하고 있는 한국에서의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GM 본사는 한국GM에 과도한 R&D(연구·개발) 비용 부과, 비싼 이전가격 책정 등을 통해 이익을 챙기고 한국GM의 적자를 유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한국GM의 경영 위기가 고임금, 저생산성의 노조 문제 외에도 방만하고 불투명한 경영으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불투명한 경영하며 현금 빼가기 의혹

한국GM의 감사보고서 등을 보면 GM 본사가 경영 위기를 겪는 한국GM에 막대한 R&D 비용을 부과하는 등 과도한 짐을 지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GM은 작년 614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글로벌 GM에 납부했다. 2014년 이후 2016년까지 글로벌 GM에 지급한 연구개발비는 총 1조8580억원이다. 해당 3년간 누적 손실(1조9718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어려우면 연구개발비를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GM은 글로벌 분납금이란 형태로 한국GM의 경영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현금만 빼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가동 중단에 들어간 한국GM의 군산 공장. GM은 “5월부터 군산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GM 본사가 한국GM을 살리기 위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지난 1월 말 만기가 된 외화차입금 4097억원을 한국GM으로부터 회수해 간 것도 논란이다. 한국GM을 살릴 의지가 있다면 만기를 연장해주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GM은 또 2013년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할 때도 한국GM이 브랜드 철수 비용 2916억원을 내게 했고, 매년 글로벌 구매·물류·회계 시스템을 제공하는 대가로 수백억원을 걷어갔다. 2012~2016년 한국GM에서 본사로 지급한 업무지원비는 1300억원에 달한다.

국내 다른 자동차 업체보다 10%포인트 높은 매출 원가율도 GM 본사가 한국GM에 과도한 부담을 지웠다는 정황으로 업계는 받아들인다. 본사가 부품을 비싸게 한국GM으로 넘기고 한국GM이 만든 차량을 값싸게 사들여 이득을 챙겼다(이전가격 논란)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GM 본사가 한국GM을 사실상 현금지급기로 활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못 미더운 GM

GM은 글로벌 사업장 철수를 빌미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원을 요청한 전력이 있다. 2013년 호주의 정부 보조금이 삭감되자 현지 생산 철수를 선언했고, 2016년에는 캐나다 오샤와 공장을 폐쇄하면서 정부와 지자체에 지원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GM을 못 미더워하며 "구체적인 장기 투자 계획"을 GM 측에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GM이 한국GM에 배정하겠다는 신차 2종의 경쟁력도 의심하고 있다. 신차를 배정해도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상원 흥국증권 이사는 "현재 GM이 글로벌 사업장을 정리하는 상황에서 한국GM이 차를 만들어도 북미 외에는 팔 데가 없을 가능성이 있고 신차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결국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등 미래 차 관련 연구·생산기지로 한국GM을 활용하고, 매년 유보이익을 얼마 이상 내도록 하는 등의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GM은 회생을 위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근로자들의 희망퇴직금으로 1인당 최대 3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조치지만, 현재 누적 적자가 2조5000억원이 넘는 상황에서 또 다른 '빚잔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