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콜센터 아웃소싱 전문 회사인 유베이스는 최근 외국인 직원들의 비자 문제로 사업 기반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이 회사는 경기도 부천에 지난 4년간 글로벌 기업들의 다국어 서비스 콜센터를 설립해 급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법무부가 이 회사 외국인 직원들의 E-7(특정 활동 비자) 연장을 불허해 직원들을 내보내야 할 상황이 됐다. 법무부는 비자 발급 요건인 82개 업종에 콜센터는 포함돼 있지 않고 내국인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허대건 유베이스 대표는 "법무부 방침이 바뀌지 않으면 당장 5월부터 직원 97명을 해고해야 해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우리나라 규제 정책이 새로운 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규제와 산업 성장 속도의 엇박자

유베이스는 2014년 한 글로벌 숙박 공유 업체의 한·중·일 콜센터 통합 관리 사업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글로벌 기업 20여 곳의 콜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이곳 직원들은 영어·중국어, 또는 영어·일본어 등 두 가지 이상 언어에 능통하다. 4년제 학사 학위 소지자는 기본이고, 미국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이나 교육학 등을 전공한 석사 학위 소지자도 많다. 사업 초기 외국인 20명과 한국인 18명으로 시작한 한·중·일 다국어 상담 서비스는 현재 외국인 470여 명과 한국인 260여 명 등으로 4년 새 20배 가까이로 늘었다. 외국인이 국내 일자리를 뺏은 게 아니라,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해 일자리를 늘린 것이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해외 고객사 비중도 최근 3년간 5%에서 15%로 늘었다.

21일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유베이스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중국과 일본 등 해외 고객들을 상담하고 있다. 직원들의 책상 위에 해당 국가 출신임을 알려주는 일장기와 오성홍기 등이 꽂혀있다.

문제는 비자 규정이 이처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허 대표는 "국내 외국인 취업 비자는 비숙련 제조 업종에만 열려 있고, 대학 나온 우수한 외국인 인재를 서비스직에 채용하려면 장벽이 너무 많다"고 호소한다. 비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은 E-7이 필요하다. 법무부는 지금껏 통·번역가, 여행 상품 기획 전문가, 해외 영업원 등으로 비자를 내주다 작년 11월부터는 "단순 콜센터 직원인데 왜 전문 인력 비자가 필요하냐"며 연장을 거부하고 있다. 외국어에 능통한 국내 인력으로 외국인 직원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지 않으냐는 게 법무부 논리다.

하지만 유베이스 측은 "글로벌 기업들이 고객의 요구 사항을 문화적 맥락까지 파악해 완벽하게 대응하려면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 채용이 필수"라고 반박한다. 가령 일본어에 능통한 한국인 직원이 일본인 고객의 불만을 접수하면 고객의 속내까지 100%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베이스 관계자는 "외국인 직원 고용 유지가 불가능하면 사업권을 포기해야 한다"며 "외국인 서비스직 비자 발급이 비교적 자유로운 말레이시아 기업들은 벌써부터 이 사업 유치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규제 혁신과 혁신 성장 발맞춰 제도 개선 필요

이런 사례는 또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 처리 전문 업체인 지속가능발전소도 최근 프랑스·덴마크 등에서 일류 개발자를 스카우트하려다가 비자 문제로 포기했다. 이 회사의 윤덕찬 대표는 "작년에 인도공과대학을 졸업한 딥러닝(심층 학습) 전문가를 채용하기 위해 서류 작업만 3개월 매달려 간신히 비자를 받았다"면서 "당시 법무부에서 추가 비자 발급은 어려울 것이라고 해 외국인 전문가 채용을 단념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비자 정책은 허가 분야 업종을 일일이 열거해 관리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다. E-7는 요리사·배우·디자이너 등 82업종에 국한되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면 아예 발급이 불가능하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우리나라 이민 정책은 값싼 노동력이 들어오는 것엔 관대하고 정작 고급 인력 유치에는 장벽이 높다"며 "미국처럼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 외국인 인재를 새로운 산업 육성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외국인 비자 문제는 일단 허용 폭을 넓히면 사회적 파급효과가 매우 크고 정책 수정이 쉽지 않다"며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듣고 일자리 창출 지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