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 실적 시즌이 끝나가는 가운데 이번 실적 시즌 또한 예년처럼 어닝쇼크(실적이 기대치를 하회하는 것)가 잇따르면서 증시에 상승 동력이 되지 못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애초 눈높이가 너무 높아 실적 발표 이후 미끄러지는 기업이 많았다는 것이다. 어닝 서프라이즈가 잇따르면서 증시 또한 탄력을 받을 때가 많았던 뉴욕증시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4분기 어닝쇼크는 한국 증시에 있어 고질병이다. 6년 연속 실제 실적이 예상치를 10% 이상 밑돌고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연말에 임원 인사가 있고, 곧이어 빅배스(잠재 손실을 한꺼번에 떨어버리는 것)를 실시할 때가 많은 것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 20% 내려간 실제 실적…미국과 달라

21일 흥국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만 해도 4분기 코스피200 기업들의 예상 영업이익은 48조원 수준이었다. 코스피200 기업들은 지난해 3분기까지 151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잘하면 사상 처음 200조원 돌파(연 기준)도 가능하다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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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달 9일 삼성전자(005930)가 예상치를 1.3%를 하회하는 66조원의 4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한 이후 실적 기대치가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다. 20일 기준으로는 영업이익 전망치가 40조원까지 내려갔다. 이는 작년 말 대비 20%가량 하향 조정된 수치다.

SK증권에 따르면 19일 기준으로 약 88%의 기업(시가총액 기준. 기업수로는 58% 진행)이 실적을 발표했다. 막판에 실적을 발표하는 기업일수록 실적이 부진할 때가 많다는 점을 봤을 때 실제 실적은 현 예상치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에만 한국전력(015760)유한양행(000100), 인터파크, 한세실업, 오리온 등이 부진한 실적을 발표했다. 삼성중공업(010140)대우건설(047040)등은 잠재 부실을 한꺼번에 반영하면서 수천억원 단위의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실적을 발표한 기업의 절반이 예상치보다 10% 이상 낮은 영업이익을 발표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정반대 상황이다. 미국은 당초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10% 안팎 늘어나는 정도일 것으로 예측됐으나 11.5% 증가했다(19일 기준). 19일까지 실적 발표 기업의 77%가 순익이 예상치를 웃돌았다. 올해 실적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최근 한달 동안 뉴욕증시 상장사들의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는 7% 상향 조정됐다. 우리나라는 1분기 실적 기대치 또한 매주 꾸준히 1~2% 하향 조정되고 있다.

실적 발표 이후 동반 급등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미국 금융주는 지난달 12일 JP모건체이스가 예상치를 12% 웃도는 4분기 매출을 발표한 이후 10% 가까이 급등하는 동반 랠리를 펼쳤다.

◇ 연말 임원 인사 이은 빅배스 때문…“매번 기대감 높였다가 실망시켜”

실적 부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환율이 있다. 4분기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6.8% 하락하면서 수출주 실적에 타격을 줬다. 반면 경쟁사인 일본의 엔화는 달러 대비 0.2% 상승해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했다.

두번째 이유는 비용 반영이다. 국내 기업들은 연말에 임원 인사를 단행하는데, 한꺼번에 비용을 떨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른바 빅 배스(big bath)다. 성과급을 연말에 몰아주는 것 또한 실적 예상이 틀렸던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같은 이유들이 모두 예고돼왔단 점에서 이번 어닝쇼크는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환율은 미리 계산할 수 있었던 이슈이고, 일회성 비용 반영도 매년 있어왔던 이슈인데 매해 기대감을 잔뜩 올려놨다가 실망시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인환 SK증권 애널리스트는 “4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많이 밑돈 것으로 보이지만, 약 12.6% 하향 조정됐을 뿐이며 이는 예년과 같은 수준”이라며 “올해 들어서는 엔화가 강세를 보이고 원화는 약세를 보이고 있어 4분기와 달리 환율 효과를 입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혁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시즌의 어닝쇼크 규모는 최근 4년간의 4분기 어닝쇼크 폭인 24.1%에 비하면 그래도 적은 수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