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에서 문제가 된 최고경영자(CE0) '셀프 연임' 논란이 민영화된 옛 공기업에서 재연되고 있다. 문제의 기업은 KT&G이다. 백복인 사장의 연임을 놓고 이사회와 1·2대 주주인 국민연금, IBK기업은행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KT&G와 기업은행은 각각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와 접촉하면서 내달 중순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까지 벌일 태세다.

◇셀프 연임 vs 정당한 선임

백 사장은 2015년 KT&G CEO 자리에 올랐다. 임기가 올해 3월로 만료되자 KT&G 이사회는 최근 연임(임기 3년)을 의결했다. 그런데 2대 주주(지분 7.53%)인 기업은행이 최근 KT&G 이사회 측에 백 사장의 연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 백 사장이 '셀프 연임'을 했다는 것이다. KT&G는 지난달 말 지원 자격을 'KT&G 전·현직 전무 이상'으로 한정해 이틀 동안 사장 공모를 낸 뒤, 서류 심사와 면접을 각각 하루 만에 끝내고 백 사장 연임을 확정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문호를 넓혀 후보를 물색해야 했는데, 백 사장 연임을 위해 공모 절차를 졸속으로 끝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또 백 사장이 CEO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KT&G는 2011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인수 과정에서 분식 회계 등 해외 사업과 관련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때 백 사장이 전략기획본부장으로 해외 신사업을 주도해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수사 결과에 따라 CEO 공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입장에 대해 최대 주주(지분 9.89%)인 국민연금도 동의하고 있으며, 정부도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업은행이 주주로서 정당한 개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반면 KT&G 측은 모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장 선임 절차는 내부 규정을 따른 것이고,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은 CEO 리스크를 문제 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KT&G는 오히려 관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은행을 통해 정부가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주주총회 표 대결로 판가름

KT&G와 기업은행은 실력대결을 불사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우선 이사회 측에 기업은행 입장을 대변할 2명의 사외이사 선임을 요구한 상태다. 또 조만간 백 사장 임기 동안 이사회 회의록을 요구할 계획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사장 연임 절차를 포함해 각종 이사회 결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KT&G 경영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KT&G는 이런 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없다. 결국 내달 중순쯤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백 사장 연임 여부, 사외이사 추가 선임 등을 놓고 표 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행은 국민연금과 보조를 맞추면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와 곧 접촉할 예정이다. ISS는 기업의 현안에 대해 보고서를 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외국인 주주들은 보고서 의견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ISS에서 연임 반대 의견 등이 나오면 우리를 지지하는 주주가 크게 늘 것"이라고 했다. KT&G 외국인 지분율은 53%에 이른다.

KT&G도 ISS와 접촉하면서, 세계 각국 지사를 통해 외국인 주주를 설득할 계획이다. 한 주당 배당금을 작년 3600원에서 올해 4000원으로 11.1% 올린 것도 외국인 주주를 배려한 것이란 게 업계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표 대결을 하면 누가 이길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치열한 장외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