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 외국계 주주 "현 회장, 현대상선 지키려 손해 끼쳐"
현대상선은 "현 회장, 두고 두고 회사에 부담 남겨" 배임 혐의 고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린 경영 판단 때문에 수년째 고난을 겪고 있다. 현 회장은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를 겪었을 때 그룹 알짜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현대상선을 지원했는데, 지원을 한 쪽(현대엘리베이터)과 받은 쪽(현대상선)에서 모두 공격을 당하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21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인 쉰들러 홀딩 아게(Schindler Holding AG)가 현 회장과 전(前)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 판결이 이날 나올 예정이다. 쉰들러는 2014년에 현 회장을 포함한 4명이 현대엘리베이터에 7870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상선 경영권을 지키고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내린 판단이 결과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2016년에 쉰들러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원을 받은 현대상선 측은 지난달 현 회장과 현대상선 전직 임직원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현 회장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린 결정으로 현대상선이 계속 부담을 지게 됐다는 게 이유다.

◇ 쉰들러 “현정은 회장, 현대상선 지키려 현대엘리베이터에 피해 입혀”

알프레드 쉰들러 회장.

쉰들러가 당시 문제 삼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였던 현대엘리베이터 측이 현대중공업그룹 등 적대적인 주주로부터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2006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넥스젠캐피탈 등과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하면서 결과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6275억7550만882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00년 10월 1일 현대건설(000720)로부터 현대상선 주식 15.16%를 매수해 현대상선 최대주주로 경영권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현대중공업그룹이 2006년 5월 2일 현대상선 지분 26.68%를 매수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당시 현대중공업그룹과 KCC, 기타 범(汎) 현대가의 현대상선 지분은 현대엘리베이터 측 우호 지분을 초과하기도 했다.

경영권에 위협을 느낀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넥스젠캐피탈 등과 파생상품계약을 맺고 우호 지분 확보에 나섰다. 계약은 넥스젠캐피탈 등이 현대상선의 주식을 취득·보유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의 우군(友軍)이 되고 주식시세가 하락하면 손실 전액을 현대엘리베이터 측이 갚아주기로 한 내용이었다. 이후 현대상선 주가가 하락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는 넥스젠캐피탈 등에 수천억원을 물어줘야 했다.

두 번째는 현대상선이 2013년에 산업은행과 ‘회사채 차환발행을 위한 특별 약정서(MOU)’를 맺을 때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주식 772만주를 담보로 제공하면서 결과적으로 회사에 1103억9600만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당시 현대상선은 경기불황 여파로 2010년말 242.85%이던 부채비율이 2013년 6월말 895.05%로 급증했고 2013년 10월부터 향후 2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와 기업어음 규모가 약 2조원에 달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회사채 차환발행을 위해 채권단인 산업은행에 회사채 신속인수를 신청했고,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에 현대상선 주식을 담보로 맡겼다.

1심 재판부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파생상품계약을 맺은 것과 현대상선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것 모두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지배주주가 재산상 이득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현대엘리베이터에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하에 의도적으로 한 행위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쉰들러는 1심 패소 판결 직후 항소했다.

장진석(가운데) 현대상선 준법경영실장이 1월 16일 본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고소한 이유 등을 설명하고 있다.

◇ 현정은 회장, 경영권 지키려던 현대상선에 배임 혐의로 고소당해

현 회장은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지키고 정부의 지원을 얻기 위해 내린 판단으로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로부터 총 7870억3938만6798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지만, 수년 후에는 현대상선으로부터 배임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처지가 됐다.

현대상선을 계열사로 두고 있던 현대그룹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2014년 7월 16일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 88.8%를 특수목적법인(SPC) 이지스 1호에 약 5998억원에 매각했다. 이지스 1호는 일본계 사모펀드인 오릭스가 35%, 롯데그룹 35%, 현대상선이 30%의 지분을 갖고 있었고, 현재는 롯데그룹이 이지스1호가 갖고 있던 로지스틱스 지분을 대부분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로지스틱스를 매각하면서 현대상선이 1094억원을 후순위로 투자하도록 했다. 또 로지스틱스의 해외내륙운송, 근해운송의 영업이익이 161억5000만원에 미달하면 미달하는 금액은 현대상선이 로지스틱스에 지급하도록 했다. 현대상선은 “로지스틱스 매각이 불안한 유동성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후순위 투자는 도저히 회수할 수 없는 구조였다. 로지스틱스에 161억5000만원을 지급하도록 한 것도 현저히 불공정한 계약”이라며 현 회장 등의 배임 혐의를 주장했다.

현대그룹은 현재 현대상선에 대한 경영권을 잃은 상태다. 현대상선은 2016년 3월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었고, 채권단은 그해 7월 출자전환(채권단이 빌려준 돈을 그 회사 주식으로 받는 것)을 했다. 출자전환 후 현 회장과 현대그룹 계열사가 갖고 있던 현대상선 지분은 20.93%에서 3.64%로 줄었다. 현재 현대상선 최대주주는 지분 13.13%를 가진 산업은행이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알짜 계열사를 팔고 그룹 전체가 어려워졌는데, 지금 와서 배임이라고 주장하니 당황스러울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현대상선을 지원한 것이 현 회장에게 큰 짐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