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 에너지 활성화와 전력 공급 안정을 위해 정부가 추진해온 소규모 전력 중개 사업 법안이 1년 넘게 국회에 묶이면서 정부를 믿고 사업을 준비한 기업들이 투자한 비용만 날릴 처지에 놓였다.

소규모 전력 중개 사업은 농촌이나 도시 외곽 지역에서 1메가와트(㎿) 이하 태양광 같은 소규모 신재생 에너지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기업형 중개사업자들이 모아 한국전력거래소에 판매를 대행해주는 사업이다. 현재 전국에 있는 2만여개 태양광발전소 가운데 98%가 1㎿ 미만의 소규모 발전소다. 거래 대행으로 소규모 발전소는 한국전력공사에 개별적으로 전력을 파는 것보다 판매 단가를 높일 수 있어 잉여 전력을 수익화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2016년 6월 소규모 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중개사업자가 대행해 판매할 수 있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전력거래소는 그해 10월 시범사업자로 KT·포스코에너지·한화에너지·벽산파워·해줌·탑솔라를 선정했다. 정부 발의 후 국회에서 개정안 통과가 차일피일 미뤄지다 이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파행을 거듭하다 19일 열린 법안 소위에서도 심사 대상에서 빠져 투자 기업들은 17개월째 사업 시동조차 걸지 못하게 됐다.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위해 발의

소규모 전력 중개 사업은 정부가 2016년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전력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며 추진했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현재 연간 4~6% 규모에서 독일처럼 20%까지 확대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중개업체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또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자가 번거로운 절차나 비용 낭비 없이 거래를 할 수 있어 신규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신재생 에너지를 집집마다 발전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정부는 (개정안 통과) 방향으로 가는 준비를 하는 게 맞는다"고 설명했다. 당시 법안소위에서 의원 간에 의견이 엇갈리면서 법안 처리를 못 했다. 일부는 대기업이 중개사업을 하게 되면 오히려 전기요금이 상승하게 된다고 반대했었다. 여기에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여야 정쟁이 심화되면서 전력 중개 관련 법안은 우선순위에 밀려 현재까지 보류되고 있다.

◇1년 넘게 법안 통과 깜깜…선정 업체들 "투자비 날릴 판"

시범사업자로 선정된 6개 회사는 1년이 넘도록 저마다 중개사업을 위한 전용 시스템과 통신 설비 등을 수억~수십억원을 들여 구축해왔다. KT는 시범사업자로 선정된 후 자사 발전소를 포함해 전국 70여개 태양광 발전소와 중개 거래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위해 통신망과 전력 예측 소프트웨어(SW) 등을 구축하고 관련 인력을 50여명 배치했지만, 사업이 추진되지 않으면서 현재 인력을 다른 부서로 돌린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수십억원의 투자 비용을 날릴 상황"이라며 "중소 협력사들과 전력 중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신뢰성에도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포스코에너지 역시 전력을 예측하고 통합적으로 관제할 수 있는 시스템과 통신망을 구축해놓고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자를 모집 중이다. 하지만 당초 수십억원대로 계획된 시설 투자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한때 8명 투입한 인력을 현재 5명으로 축소했다. 한 시범사업체 관계자는 "하루빨리 법안 통과 여부를 결정해야 기업도 이에 맞춰 투자를 하든 사업을 접든 결정을 내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소규모 전력 중개 사업

1메가와트(㎿) 이하 태양광 같은 소규모 신재생 에너지 발전 전력을 중개사업자들이 한꺼번에 모아 전력거래소에 도매로 거래를 대행해주는 사업. 한국전력공사를 통해 정산하는 것보다 태양광 전력 단가를 높일 수 있고, 손쉽게 전력 거래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