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냈음에도 '희망퇴직'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희망퇴직이란 근로 기간, 나이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한 근로자가 퇴직을 희망할 경우 정년 연령에 도달하지 않고 사직하는 것을 말한다.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지 사실상 '강제 퇴출'에 가깝고,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퇴직자 1인당 평균 3억~4억원의 웃돈을 주고 내보내기 때문이다. 연간 수조원대 이익을 내는 은행 업종이 아니면 엄두를 내기 힘들다. 비용을 들인 만큼 기대한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은행의 고비용 '다이어트'가 수천억원짜리 청구서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많다. 또 기업의 당사자 중 직원만 좋을 뿐, 주주, 고객에겐 해(害)를 끼치는 행위라는 지적도 있다.

4대 은행 희망퇴직 2400명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한·우리·KB국민·KEB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을 떠난 희망퇴직자는 약 2400명이다. 4대 시중은행이 이렇게 지급한 퇴직금은 작년 하반기부터 약 8000억원에 달한다.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임금피크제 대상자 등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았다. 그 결과 각각 400명(퇴직금 1550억원), 207명(930억원)이 은행을 떠났다. 신한은행에서는 지난달 초 700명이 희망퇴직했다. 전년(280명)의 2.5배 수준으로, 비용도 2230억원을 썼다. 우리은행에서는 작년 7월 1011명이 퇴직했다. 퇴직금으로 3000억원이 들었다.

전문가들은 은행에서 희망퇴직이 연례행사가 되고 있는 요인을 은행의 '고비용 구조'에서 찾는다. 실제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 행원 한 명당 인건비는 2011년 1억500만원에서 2015년 1억1100만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한 명당 총이익은 같은 기간 4억3000만원에서 3억3300만원으로 줄었다. 국내 은행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도 호봉제 중심의 보상 시스템을 유지하다 보니, 매출이 줄어도 임금은 느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빗나간 화살, '희망퇴직'

문제는 시중은행이 고비용 구조 해결의 '몸통' 대신 '꼬리'만 건들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은행의 성과보수 체계 전반을 수술하지는 못하고, 거액의 퇴직금을 쥐어주는 쉬운 길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례행사가 된 희망퇴직은 고비용의 '빗나간 화살'로 전락했다. 현재 대부분 국내 은행의 경우 행원 2명 중 1명은 과장급 이상 관리자이고, 3명 중 1명은 억대 연봉을 받는다.

희망퇴직이 당초 목표했던 효과를 거두려면 연봉이 높은 중간 관리자 이상에 집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작년 초 희망퇴직으로 2800명을 내보낸 KB국민은행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국민은행은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최대 36개월치 기본급을 퇴직금으로, 1인당 평균 2억8800만원씩 지급했다. 하지만 희망퇴직자 중 1000여 명이 최하위 직급에서 나왔다. 반면 억대 연봉을 받는 과장·차장, 팀장·부지점장, 부장·지점장 등 3개 관리자 직급에선 각각 500~600명 정도만 희망퇴직을 했다. "허리 사이즈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뱃살은 여전하고, 다리만 가늘어졌다"는 평이 나왔다.

생산성 대비 과도한 혜택

과도한 희망퇴직 비용은 결국 고객과 주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신한은행이 이번에 지급한 명예퇴직금(2230억원)은 작년 당기순이익(1조7110억원)의 13%, 배당금(5400억원)의 41%에 달한다. 우리은행 희망퇴직금도 작년 순익(1조5121억원)의 20%에 수준이다.

또 은행이 손쉽게 번 '예대 마진'으로 퇴직금 잔치를 치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퇴직금의 출처는 고객의 대출 금리는 가파르게 올리고, 예금금리는 적게 올리는 식으로 고객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이라는 것이다. 작년 4대 은행의 순이자 이익은 전년 대비 1조7000억원가량 늘어난 19조9237억원이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고성장 시대에 대거 입행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때까지는 희망퇴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이 신시장 개척, 성과 시스템 도입에 앞장서지 않으면 비효율적 구조가 더욱 고착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