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구치소행 호송차로 가고 있다.

"참담합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13일 롯데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롯데 임직원들은 신 회장이 징역 10년을 구형받은 경영 비리 관련 1심에서 작년 12월 22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을 때는 크게 안도했으나, 이날은 패닉에 빠졌다.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던 신 회장은 선고 다음 날인 14일 국제스키연맹(FIS) 만찬을 주최하기로 하는 등 결과를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롯데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며 "증거를 통해 무죄를 소명했지만 인정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63번째 생일(14일)을 구치소에서 맞게 됐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2심에서 K스포츠재단에 제공한 출연금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던 것을 거론하며 "판결 내용을 보면 삼성과 롯데 사건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법원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일본 롯데 경영권 다시 안갯속으로… 10조 글로벌 프로젝트 차질

재계 5위, 연매출 100조원의 롯데가 신 회장을 중심으로 추진하던 '뉴 롯데' 구상은 사상 초유의 총수 부재 사태로 올 스톱이 불가피해졌다. 동남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에서 벌여왔던 10조원대 글로벌 프로젝트도 추진 동력을 상실하며 좌초 위기를 맞았다.

롯데는 인도네시아에서 연산 100만t 규모의 나프타 분해 시설 설비를 증설하는 등 총 40억달러(약 4조3400억원)짜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는 20억달러짜리 '에코 스마트시티' 사업을, 미국 루이지애나에선 35억달러짜리 에탄 분해시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롯데 계열사 임원은 "특히 글로벌 프로젝트는 그룹 총수의 전략적 의사 결정이 절실한데, 앞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을 겪은 뒤 신 회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일본 롯데의 한국 롯데 지배 해소 작업'도 장애물을 만났다. 신 회장은 경영 성과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頂點)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이번 실형 선고로 롯데홀딩스 지분의 과반을 확보한 종업원·임원지주회·관계사 등이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생겼다. 신 회장은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해임될 수도 있다. 일본은 기업 대표의 윤리 경영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향후 일본 롯데가 지분 상당수를 갖고 있는 한국 롯데 계열사 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할 수 있다. 신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다시 시작된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한국 롯데 지배력을 낮추기 위한 호텔롯데 상장 작업도 무기한 미뤄질 전망이다.

롯데로선 서울 잠실 월드타워 면세점 사업권 박탈 가능성도 부담이다. 관세청은 롯데가 부당한 방법으로 면세 사업권을 획득한 것이 확인될 경우 사업권을 회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롯데 주변에선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 경영 체제 가동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재계 "고무줄 잣대, 이해할 수 없다"

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대통령이나 정권 실세가 요구하는데 어느 기업이 무시할 수 있겠느냐"며 "이런 걸 뇌물로 판단한다면 기업이 정부를 도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법원 선고가 재판부와 심급(審級)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왔다. 10대 그룹 관계자는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상당 부분 무죄가 나면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점을 고려하면 2심에서 다툼의 여지가 많은데, 곧바로 법정 구속한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법원이 판단한 기준이 무엇인지 납득되지 않는다"며 "공장을 폐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려는 한국GM이 이해가 될 정도"라고 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롯데는 사드 보복 등 국내외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근 5년간 고용을 30% 이상 늘린 '일자리 모범 기업'인데 유죄 판결을 받게 돼 몹시 안타깝다"며 "이번 판결이 롯데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