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1심 공판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됨에 따라 롯데그룹은 창립 50년만에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위기를 맞게 됐다.

신 회장의 실형이 확정되면서 10조원이 넘는 공격적인 해외투자, 호텔롯데 상장 등 지배구조 개선 등을 추진해온 ‘뉴롯데’가 위기에 몰렸다. 특히 일본 롯데홀딩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호텔롯데 등 주요 계열사의 경영권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총수 공백 사태,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 작업 ‘스톱’ 위기

신동빈 회장이 2004년 정책본부장에 취임한 이후 2016년까지 롯데그룹은 36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이 기간 롯데그룹의 매출액은 23조원에서 92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롯데그룹의 도약을 진두지휘했던 신 회장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롯데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투명경영 마인드가 강했던 신 회장은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주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국내 계열사 91개 중 51개 계열사를 한데 묶은 롯데지주가 공식 출범했다.

하지만 그룹의 또 다른 축인 관광과 화학 계열사들은 아직 롯데지주로 편입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와 L1~L12 투자회사가 호텔롯데-롯데물산-롯데케미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고리를 100% 지배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국내 1위 면세업체 롯데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물산은 롯데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유통·식품 중심이던 롯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대거 확장한 알짜 회사다.

혼돈의 롯데.

롯데그룹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배력을 낮추기 위해 호텔롯데의 상장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롯데면세점 등의 실적 악화로 호텔롯데의 기업가치가 떨어지면서 상장이 늦어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구속되면서 호텔롯데 상장이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기업 상장 요건 심사 때 회사의 경영 투명성 결격 사유를 주요 평가 항목 중 하나로 본다는 점에서 신 회장의 구속은 호텔롯데의 상장 작업에 장애요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텔롯데 상장이 무산되면 지주사 체제 완성은 물론 일본 롯데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된다. 신 회장은 지난해 4월 출국금지가 해제된 후 연이어 일본을 방문하며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진에 이해를 구하고 지속적인 지지를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일본은 경영진의 도덕 문제에 대해 한국보다 민감하다”면서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 등 일본 경영진이 신 회장의 실형을 이유로 지지를 철회할 경우, 호텔롯데 고리 안의 계열사는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에 넘어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베이징 롯데마트.

중국 롯데마트 매각·해외 시장 다각화 계획도 차질 불가피

총수 부재로 인한 롯데그룹의 경영 활동 위축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롯데그룹은 현재 중국 롯데마트 매각과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대형 M&A나 해외 투자는 오너가 결심해야 가능하다”며 “오너가 부재인 상황에선 이같은 경영활동이 대부분 중단된다”고 말했다.

당장 중국 롯데마트 매각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롯데마트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112개(슈퍼마켓 13개 포함)에 달하는 현지 점포의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워지자 지난해 9월부터 연내 매각을 목표로 매각을 추진해왔으나 성과가 없는 상태다.

롯데그룹의 신시장 개척 작업도 빨간불이 켜졌다. 롯데는 지난해 미국 화학 기업인 엑시올 인수를 시도했지만 당시 신 회장이 출국금지되는 등 검찰 수사 장기화 등의 여파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롯데그룹이 현재 해외에서 추진 중인 굵직한 사업 규모만 100억달러(약 10조8000억원)가 넘는다. 롯데그룹은 인도네시아에서 총 40억달러(약 4조3000억원) 규모의 나프타 분해 설비 증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베트남 호찌민 '에코 스마트 시티' 사업 등에는 20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또 인도와 미얀마 식품 부문 인수·합병(M&A)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는 35억달러 규모의 셰일가스 기반의 에탄크레커 플랜트 건설을 진행 중이다.

해외사업을 주도해온 신 회장의 부재는 기존 해외사업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2016년 해외에서 11조6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중 절반인 5조9870억원을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 동남아 시장에서 거뒀다. 롯데그룹이 동남아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데는 신 회장 개인의 현지 인맥과 네트워크가 큰 힘을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으로선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후폭풍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오너 부재 상황을 맞게 됐다”면서 “중국 문제와 각종 해외사업으로 바쁜 그룹 입장에선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