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총액 세계 3위 가상화폐(암호화폐·cryptocurrency). 구글(GV),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야후 설립자 제리 양의 벤처 펀드(AME Cloud Ventures)가 투자한 기업. 스탠다드차타드, UBS, 뱅크오브아메리카, SBI홀딩스 등 100여 개 글로벌 금융사를 고객사로 둔 회사. 리플(Ripple Inc.)과 리플 코인(XRP)에 대한 설명이다.

톱 3 가상화폐 개발사이자 제도권과 가장 가까운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평가받는 리플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업계 키플레이어들은 최근의 투기 광풍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 1월 26일(현지시각) 샌프란시스코 리플 본사에서 스테판 토마스 리플 CTO(최고기술경영자)를 만나 가상화폐, 블록체인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편집자주]

시티은행, 웰스파고, 연방준비은행 등이 모여 있어 ‘서부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 of the West)’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금융지구. 리플 본사는 이 곳 금융지구 내에서도 중심 거리인 몽고메리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금융업체와 쉽게 협업하기 위해 선정한 장소다. 페이스북에서 근무하다 리플에 합류한 톰 채닉 리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금융가에 있지만 회사 분위기는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과 비슷하다”고 했다.

리플 샌프란시스코 본사 2층 로비.

출입증을 찍어야 탑승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하니 높은 천장, 촘촘히 들어선 책상과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헤드폰을 끼고 작업하는 개발자들, 음료와 간식이 가득한 스낵바도 보였다.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회의실에 나타난 토마스 CTO는 사무실 한켠에 놓인 방송용 조명과 카메라를 가리키며 “인터뷰를 마친 후 넷플릭스와 다큐멘터리 촬영이 예정돼 있다”고 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재차 실감했다.

가상화폐 태동기부터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 2012년 리플에 합류한 토마스 CTO는 업계 최고 전문가 중 하나로 꼽힌다. 비트코인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접속하는 웹사이트 중 하나인 ‘위유즈코인스(WeUseCoins.com)’를 설립했고, 비트코인 오픈 소스 라이브러리 ‘비트코인JS(BitcoinJS)’를 만들었다. 최근엔 리플 설립자인 크리스 라센과 공동으로 미국 스타트업 옴니(Omni)에 투자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한국독자들을 위해 간략히 회사를 소개해 달라.

“리플(Ripple Inc.)은 블록체인 기반 기술 회사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이 본사고, 직원은 200명 가량 된다. 유명 벤처투자사(VC), 산탄데르·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액센추어·시게이트 같은 큰 회사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아직 기업공개(IPO)는 안 했다.”

-리플이 하는 일은.

“우리는 솔루션을 판다. 우리의 미션은 지급(payment)을 매끄럽게(frictionless) 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론 ‘가치의 인터넷(internet of value)’을 만들어 이메일처럼 편하게 돈을 보내고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솔루션이란.

“우리가 개발한 일련의 소프트웨어 제품을 말하는데, 엑스커런트(xCurrent·글로벌 결제), 엑스래피드(xRapid·유동성 공급), 엑스비아(xVia·리플 네트워크 인터페이스) 세 가지가 있다. 저렴하고 빠르게 국제 송금, 지급, 결제가 이뤄지게 해준다. 우리 제품을 하나라도 사용하는 은행과 기업은 모두 리플 네트워크(RippleNet)의 일부라고 보면된다. 리플넷은 나름의 룰을 가지고 있으며 합류하려면 여기에 동의해야 한다.”

스테판 토마스 리플 CTO가 XRP를 이용한 국제 송금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노드 서밋(node summit)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는 인터뷰 후 넷플릭스와 다큐멘터리 영상 촬영이 있다며 리플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로 갈아 입었다.

-거래소에서 매매되는 리플코인(XRP)은 무엇인가.

“XRP는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이다. XRP 원장(ledger·거래를 기록하는 장부. 거래기록을 여러 장부에 나눠서 기록하는 분산원장기술을 통칭 블록체인이라 부른다)에서 사용하는 기초 화폐로 보면 된다. 빠르고 저렴한 국제 송금, 지급, 결제가 가능하도록 브릿지 통화(bridge currency) 역할을 한다.”

-얼마나 빠른가.

“지급부터 결제완료까지 4초 걸린다. 전통적 방식으로 국제 송금했을 때 3~5일 소요되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환전 수수료도 안든다. XRP가 브리지 통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즉시 돈을 받을 수 있어 효율적이다. 거래 처리 속도 역시 초당 1500건으로 가상화폐 중 가장 빠르다.”

-사용사례(use case) 추이는.

“잠재력이 크다. 우리는 최대 60%의 비용 절감을 확인하고 있다. 일주일 전엔 미국 최대 송금업체 머니그램과 손잡았고, XRP를 유동성 도구로 사용하는 다른 고객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이 네트워크를 더 키우려 노력하고 있고, 이 추이가 계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가상화폐 투기 광풍은 어떻게 보나.

“2010년 업계에 들어왔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시장 규모가 훨씬 커진 상황이다. 현재 상황이 버블인지 아닌지 판단하긴 쉽지 않지만, 분명한건 이 시장에 접근하려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조사(research)를 철저히 해봐야 한다. 우리는 투자를 부추기거나 권하지 않는다. 단지 XRP가 가진 실용성(utility)에 주목하고 있고 XRP의 사용사례 확장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샌프란시스코 본사에 전시돼 있는 리플 로고 디자인의 역사. 세 점이 하나로 연결된 모양으로 리플 솔루션의 속성(분산·연결)을 의미한다.

-가격 등락(volatility)이 심한 이유는 뭘까.

“디지털 자산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가격 모델이 무엇인지, 시가총액과 자산 가치가 얼마나 관련 있는지 알아내기 쉽지 않다. 사람들이 이를 찾으려 애쓰고 있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디지털 자산을 스타트업처럼 생각한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은 주식이 있고 수익을 발생시키지만, 디지털 자산은 원자재 상품(commodity)이나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통화(currency)에 가깝다.”

-가격 변동이 심하면 브릿지 통화로 쓰기 어려운 것 아닌가.

“변동성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외송금(international wire)을 할 때 비교적 변동성이 적은 미국 달러를 많이 사용한다. 재밌는 점은 미국 달러를 보낼 때 통상 3~5영업일이 걸리지만, XRP는 3~4초면 된다는 사실이다. 변동성 위험은 거래 처리에 소요되는 시간만큼 지속된다. XRP 거래 처리 속도가 8만6000배 빠르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이 낮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정책 전문가는 아니지만 들은바로는 합리적인(sensible) 룰이고, 거래소를 확실하게 규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들었다. 가상화폐 생태계 전반으로 봤을 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돈세탁이나 테러, 해킹을 저질러 룰을 깨는 사람을 처벌하는 건 당연하다. 생태계가 잘 자라도록 돕는 건강한 행보일 것으로 믿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계속 좋은 결정 해주길 바란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콘텐츠 제작팀이 스테판 토마스 리플 CTO와 촬영 콘셉트를 논의하고 있다.

-코인베이스(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를 비롯한 다른 거래소 상장 계획은.

“XRP는 현재 세계 60개 이상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고 우리는 그 숫자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정 거래소 이름을 언급하긴 어렵지만 안전하고 고객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래소라면 언제나 상장을 논의할 수 있다. 마운트곡스(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으나 해킹으로 파산) 사례처럼 보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회사 내부 통합팀에서 거래소 리뷰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