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금리 상승→대출금리 상승→소비위축' 악순환 우려
"경제 외교로 美보호무역주의 장벽·자금이탈 최소화해야"

세종시에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2억원을 변동금리로 빌렸던 김 모씨(37세)는 최근 언론에 미국 채권 금리 상승 소식이 보도될 때마다 초조하다. 지난해 11월에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국채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금리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대출금리의 연이은 상승으로 연간 이자비용을 수백만원가량 더 지출해야 할 판이다. ‘어떤 씀씀이를 줄여야 하나’ 김 씨는 고심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용 패널의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인 박 모씨(55세)도 걱정이 많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은 그만큼 미국 경기가 좋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박씨는 당초 대기업에 납품하는 수출용 태양광 패널 주문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태양광 패널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는 등 한국 기업의 대미수출을 억제하는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2.88%까지 급등하면서 금융시장 등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임금 증가율이 8년7개월만에 최고치(2.9%)를 기록해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높아진 게 기폭제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올해 기준금리 인상 횟수 전망은 당초 3차례에서 4차례로 늘어났다. 글로벌 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만에 본격적인 유동성 긴축기 문턱에 들어섰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우선 글로벌 국채 금리 급등은 1400조 이상의 가계부채를 짊어진 한국 경제엔 큰 악재다. 무엇보다 이자부담 증가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떨어져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국채 금리 급등에 따른 주식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으로 가뜩이나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희석될 수 있는 상황이라 글로벌 금리 상승은 한국 경제의 부담일 수밖에 없다.

또 미국의 국채 금리 급등으로 신흥국에 유입된 글로벌 자금의 유출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업 실적이 양호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어 당장 자금 유출의 위험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만약 신흥국 시장이 흔들릴 경우 한국도 그런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미국의 국채 금리 급등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미국 경제가 탄탄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미국발(發) 세계경제 호황은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 가능성은 원화 강세를 막아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 무역주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수출 여건에 커다란 악재로 등장했다.

김현욱 KDI(한국개발연구원) 거시경제부장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은 경기과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미국 경기가 개선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면서 “우리 경제에 좋지 않은 상황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가계부채로 인한 이자부담 증가 등 금리인상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관리하고 미국 경기 호황을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내 주력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연준 금리인상 앞두고 통화스와프 꺼낸 정부·한은…’머니무브 차단’

한·스위스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합의안을 발표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9일 한국은행과 스위스 중앙은행이 3년 만기로 10억스위스프랑(원화 11조2000억원) 규모의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은은 지난해에도 캐나다중앙은행과 무제한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미 연준의 본격적인 금리 인상을 앞두고 외국인 자금 유출 가능성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제 부총리와 한은 총재가 한자리에 모여 기축통화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알린 것도 이런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마이너스 통장과 성격이 비슷한 통화스와프 계약은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터졌을 때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상대방 중앙은행으로부터 원화로 해당 통화 자금을 빌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일종의 외환안전망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엔 ‘한국에 투자한 돈을 떼일 일 없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 다른 신흥국과 한국 시장의 차별성을 부각해 위기 상황이 닥치더라도 자금 이탈을 최소화하겠다는 게 정부와 한은의 의도다.

특히 이번 통화 스와프 계약은 지난해 11월 한-캐나다 통화스와프 계약에 이어 기축 통화국과의 두번째 통화스와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 금융시장의 주요 6대 기축 통화국인 미국, 일본, EU, 영국, 스위스, 캐나다 중 두 나라와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는 점은 한국이 기축 통화국 수준의 안정적인 지위를 간접적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주요국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에 비해 통화가치가 열등한 나라와 통화스와프 계약을 가급적 맺지 않는다.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한국 원화가 기축통화국과 비슷한 지위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공인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한-스위스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이 알려진 후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0일 현재 1085원에 거래되며 서울 외환시장 종가(1092.1원)대비 6.6원 내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말만 하더라도 1060원대에서 등락했다. 하지만 미국 국채 금리 급등으로 미국 증시가 패닉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지난 2일 이후 원·달러 환율은 일주일 사이에 30원가량 오르며 한때 1100원 돌파를 시도하기도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단기간에 1조원 이상의 주식을 매도한 결과였다. 통화스와프 계약은 이같은 ‘머니무브’ 조짐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형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율이 30%에 불과할 정도로 대외건전성이 우수하지만 소규모 개방경제체제인만큼 선진국발(發) 머니무브에 대한 경계감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면서 “기축통화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한국 원화의 안정성을 부각시켜 원화자산에 대한 매도를 주춤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1400조 넘은 가계부채 위험성 증가…’소비 위축’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는 가장 약한 고리는 다름아닌 14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영역이다. 글로벌 금리 인상이 가계부채 부실을 낳아 금융기관도 동반 부실화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떨어뜨려 소비를 위축시킬 개연성은 농후하다.

은행 대출 금리는 국고채 금리 등 시중금리와 연동한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오는 12일부터 적용하는 주택담보대출 가이드라인금리(3.81~5.01%) 상단을 연 5.01%로 고시했다. 지난해말 가이드라인 금리 상단(4.81%)에 비해 0.2%포인트 올랐다. NH농협은행(3.65∼4.99%), 신한은행은(3.77∼4.88%), 하나은행(3.664∼4.864%), 우리은행(3.72∼4.72%)의 금리 상단도 4%후반대까지 상승했다. 주택담보대출 가이드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AAA등급 5년물 금리가 올해 들어서만 0.2%포인트 급등한 데 따른 조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인상되면 대출금리는 3%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또 가구당 연 평균 이자는 308만원에서 476만원으로 증가한다. 한은도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보유자산을 팔아도 부채를 갚기 어려운 고위험 가구수가 2만5000가구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이후 국내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 18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국고채 금리는 미국 채권 금리 상승 움직임을 추종하고 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환율, 자금 유출입 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한은도 결국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18일 2.62%에서 지난 7일 2.84%로 0.2%포인트 급등했고, 한국 채권시장에서 지표물 역할을 하는 국채 3년물 금리도 이 기간에 2.17%에서 2.24%로 상승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 추이

한은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장기물 국채 금리는 국내 채권시장에 유입된 글로벌 자금 추세에 따라 움직이면서 미국 장기 국채 금리에 동조화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한은의 통화정책보다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른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이 국내 채권금리 상승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은이 여전히 낮은 물가상승 압력 등 국내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미 국채금리 동향에 따라 움직이는 채권시장에 의해 사실상 긴축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월가에서는 오는 3월 연준의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가 1.50~1.75%로 올라가게 되면 한은 기준금리(1.50%)를 추월하는 한미 금리역전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기준금리만 놓고 보면 국내에 유입된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환경이 조성된다.

김경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미국 장기채 금리가 상승하면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동결되더라도 한국 장기채 금리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미 금리 역전현상이 발생하더라도 단기간에 그칠 경우 대규모 자금 유출의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은 이미 한미 간 금리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을 인지하고 있고, 글로벌 자금 이동은 금리 수준뿐 아니라 환율에도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기간 금리역전 현상이 발생한다고 큰 폭의 자금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 글로벌 달러 강세는 수출 경기에 도움될 듯…트럼프 보호무역주의는 ‘大악재’

미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원화 강세 속도가 조절될 것이라는 점은 수출이 성장 동력인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월 수출액은 작년 1월보다 22.2% 증가한 492억1000만 달러로 기록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환율 변동에 따른 가격차이에 민감한 자동차부품(-6.5%), 디스플레이(-7.6%), 무선통신기기(-9.7%), 가전(-8.8%) 등의 수출액은 줄었다. 지난해 1월 1185원(평균환율)이던 원·달러 환율이 올해 1월에는 1066원으로 약 10% 이상 절상된데 따른 결과라는 평가다.

하지만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연 4회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글로벌 달러 약세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0월 1130원대에서 올해 1월말 1060원 수준까지 하락(원화강세)했지만 이달초부터 상승세로 방향을 틀어 1090원까지 올랐다(달러강세). 한 정부 당국자는 “주요국 통화중 가장 높은 절상률을 보였던 원화가 연준의 금리인상 전망으로 약세로 방향을 튼 것은 자동차 등 가격 변수에 민감한 품목 등의 수출에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정부의 통상압력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점은 큰 악재다. 미국 행정부는 지난달 22일(현지시각)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모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형 가정용 세탁기 수입물량에 최대 5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고, 한국산 태양광모듈에도 세이프가드 발동 첫해 수입 초과물량에 30%의 관세를 추가로 물리기로 했다.

게다가 미국 상무부 집계 기준 미국의 대(對) 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지난해에도 200억달러를 넘어서 한국이 올해도 미국 재무부의 환율관찰대상국에 지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가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을 늘리는 등 대미 흑자규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와 상관없이 한국 정부의 외환정책 등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더욱 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