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요. 몰라. 어떻게 되겠죠.”

지난 8일 오후 한국GM 인천 부평공장 정문. 퇴근하는 주간조 직원들에게 다가가 한국GM 철수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자,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직원 대부분은 "할 말이 없다" "문제없다"는 식으로 짧게 대답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날 부평공장 분위기는 ‘독자 생존이 가능한 사업을 위해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는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 발언이 알려지면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전날 노사 임단협 교섭이 시작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사측은 노조에 기본급, 성과급 등 인건비를 포함한 의제를 협상에 올려 사실상 인건비 절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부평공장 근로자들은 사측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불만이 많은 듯 보였다. 현재 부평공장은 월평균 20일 이상 조업하고, 공장 가동률은 100%를 유지하고 있다. 근무도 여전히 주간조와 야간조 2교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국GM 철수설의 원인이 된 군산공장은 가동률이 20%에 머물고, 그나마도 이날부터 공장 조업을 중단했다.

부평공장 전경.

이날 만난 한 직원은 “우리(부평) 공장은 잘 돌아간다”며 “철수설은 군산공장에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 부평공장 직원들 “우리는 문제 없다...군산공장이 문제”

이날 GM대우차 부평공장 주변은 강추위 때문인지 스산한 분위기였다. 오후 3시40분이 넘어서자 공장 입구에 비정규직지회에서 걸어둔 ‘정규적 전환 요구’ 현수막 사이로 퇴근하는 근로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퇴근길도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한국GM 철수설 보도가 이어지면서 직원들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한국GM 노사는 이날 임단협 2차 교섭을 시작했다. 노사 교섭 기간에는 공장으로 들어가는 정문, 남문 등 모든 출입문은 외부인 접근이 통제된다. 경비용역 업체 한 직원은 "오늘부터 외부인 통제를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GM 노사가 2018년 임단협을 서둘러 진행한 것은 3월 글로벌 GM 차원에서 이뤄지는 신차 배정 때문이다. 노사 임단협을 통해 인건비 등 제조여건 효율화가 이뤄지면, 한국GM은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GM을 설득해 국내에서 생산할 신차를 받아오겠다는 것이다.

완성된 수출용 트랙스를 운송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부평공장지회와 군산공장지회, 창원공장지회의 입장이 모두 달라, 임단협 타결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부평공장은 가동률이 100%에 육박할 정도로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회사가 제조 경쟁력을 이유로 기본급과 상여금, 복리후생비, 학자금 등을 교섭 의제로 올려둔 것에 대해 불만이 크다.

부평 1공장 직원은 “우리 공장은 그래도 꾸준히 생산이 이뤄지고 있어 직원들이 크게 동요하는 것은 없다”며 “군산공장이 문제라는데 그건 그쪽 사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직원들도 회사가 어려운걸 모두 알고는 있다"며 "군산공장 때문에 우리 공장 직원들에게도 얼마나 고통분담을 강요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 부평공장 2001년 정리해고 아픈 기억…“고통 분담 없었다” 냉담

부평공장 직원들이 군산공장 상황에 냉담해진 이유는 2001년에 있었던 정리해고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2000년 11월 대우차가 최종부도 처리되자 GM이 인수자로 나섰다. 그러나 GM은 창원공장과 군산공장만 인수하고 부평공장은 제외했다.

부평공장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전 직원이 2교대로 근무할 만큼의 생산량, GM의 평균보다 높은 품질, 노사 평화 등의 조건이 충족되면 인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부평공장은 GM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1750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 당시 창원공장과 군산공장에서는 부평공장 근로자가 정리해고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부평공장 울타리에 걸려있는 근로자 자녀들이 그린 그림.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부평공장 근로자들이 현재 상황에 대해 남 일처럼 반응하는 것은 2001년 구조조정 당시 창원공장과 군산공장 근로자에게 섭섭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부평공장도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생산하는 차종이 최근 들어 감소하는 추세다. 2015년만 해도 부평공장 생산 차종은 알페온과 말리부, 캡티바, 트랙스, 아베오 등 5개였다. 그러나 알페온 후속차종으로 임팔라가 수입됐고, 캡티바도 올해 미국에서 에퀴녹스가 수입되면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3개로 줄어들게 된다. 이미 캡티바의 경우 판매량이 적어 생산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부평공장 사무직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퇴직자가 발생하더라도 신규 채용을 최소한으로 줄인 상태다.

해외수출 감소와 이에 따른 군산·부평공장의 생산 축소로 한국GM은 2017년 판매량(52만4547대)이 전년보다 12.2% 감소했다. 이로 인해 6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낸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앞서 한국GM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조원에 이르는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1분기에는 자본잠식에 빠졌다.

◇ 인근 상인들 “설마 철수하겠어? GM이 한국정부 지원 바라는 듯”

인근 상인들도 철수설 때문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장 주변 식당 주인들은 "전에 구조조정을 세게 한 기억이 있어 진짜로 철수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했다. 현재 부평공장의 정규직은 4000여명에 이른다. 비정규직과 700여 협력업체에도 2만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부평공장은 인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에 이른다.

공장 인근에 걸려 있는 현수막.

철수하게 되면 1차 협력업체부터 2, 3, 4차 협력업체까지 차례로 일자리가 줄어 지역경제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근 노래방 주인은 “어렵다고는 하는데 여기는 직원들이 잔업과 특근도 여전히 하고 있어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다”면서도 “혹시 구조조정이나 월급이 깎인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장사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철수설이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 듯했다. 부평 지역주민은 "철수설이 한두 번 나온것도 아니고, 어렵다는 말만 나오면 매번 도는 이야기 아니냐"면서 “정부 지원을 바라고 이번에도 철수설이 나오는 것 같은데, 이렇게 큰 회사가 갑자기 철수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GM 부평공장 주간조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김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