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장 인선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에너지 공기업의 맏형격인 한국전력은 사장 공모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한전 사장 자리는 작년 12월 8일 조환익 전 사장이 임기를 3개월여 남기고 사퇴한 뒤 2개월 넘게 비어있다. 지난 5일부터 사장 공모를 시작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뚜렷한 하마평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탈원전 인사가 사장에 선임될지 에너지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9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조 전 사장이 물러난 뒤 작년 12월 말 이사회를 열고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아직 공모 절차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관계자는 “적당한 사장 후보자가 아직 나오지 않아 공모를 시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전이 국가 에너지 정책의 한 축인만큼 정부 코드뿐 아니라 전문성까지 고려하다 보니 사장 인선이 늦어지는 모양새다”고 말했다.

에너지업계에선 전력공급의 지휘관 역할을 하는 한전 사장의 공백이 장기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한전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전력 공급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비상체제를 가동 중이다. 한전 관계자는 “자칫 전력 관련 사고가 나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 사원이 비상 근무 중이다”며 “사장이 없어 의사결정 등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조만간 공모 절차를 시작할 것으로 보고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DB

한수원은 이관섭 전 한수원 사장이 물러나고 17일 만인 지난 5일 사장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하마평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수원 한 관계자는 “내부 인사가 사장으로 올라갈지, 외부 인사가 들어올지 전혀 정보가 없어 내부적으로도 초조해하며 기다리는 중이다”며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수원 사장으로 누구를 앉히든 잡음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후보자 관련 정보를 철저히 단속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수원 노조는 탈원전 인사가 사장으로 선임되면 출근 저지 등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수원 노조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맞서 한수원 입장을 최대한 대변할 수 있는 인사가 신임 사장으로 와야 한다”며 “만약 정부 정책에 동조해 탈원전을 가속화하는 인사가 온다면 한국 원전 산업은 물론이고 직원들 고용안정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이달 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원전 수출 세일즈에 나선다. 이에 대해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대표적인 탈원전 인사인 백 장관이 원전 기술을 소개하고 원전을 세일즈하는 것을 다른 나라에서 과연 좋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며 “특히 한수원 사장의 경우 원전 관련 전문가가 선임돼 백 장관을 돕고, 정부의 일방적인 탈원전 정책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산업부 산하 41개 공공기관이 기관장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됐던 공공기관장이 줄줄이 물러나면서 후속 인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일 전력거래소 신임 이사장에 조영탁 한밭대 교수를 내정했다. 지난 7일에는 한국전력기술이 임시주총을 열고 이배수 전 한국발전기술 부사장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한국중부발전과 한국남동발전, 한전KDN도 지난 6일 임시주총을 열고 각각 박형구 전 중부발전 발전안전본부장과 유향열 전 한전 해외부사장, 박성철 전 한전 영업본부장을 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국동서발전은 지난 5일 박일준 전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조정실장을 사장으로 선임했고, 한국남부발전과 한국서부발전, 한국석유공사도 조만간 사장 인선을 마무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새롭게 선임된 산업부 산하 기관장은 문태곤 강원랜드 사장, 정승일 한국가스공사 사장, 김형근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김학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정상봉 한국원자력연료 사장, 차성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 조성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고영태 한국가스기술공사 사장, 정동희 한국산업기술시험 원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