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이 또다시 M&A(인수합병) 시장에 나왔다. 호반건설이 8일 돌연 대우건설 인수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로 시작된 건설업계 국내 3위 대우건설의 '떠돌이 생활'은 20년을 채울 가능성이 커졌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매각될 때 6조4000억원이던 대우건설 몸값이 1조6000억원(호반건설 제안 가격)까지 떨어졌는데, 그 가격을 불렀던 호반건설마저 인수를 포기하며 떨어져 나갔다. 산업은행이 나랏돈 3조2000억원을 들인 대우건설을 애초 헐값을 제시하고 불발 가능성도 높았던 호반건설에 무리하게 넘기려고 했던 데 대한 책임론도 나온다.

대우건설 안팎에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지방 주택 시장 중심으로 활동해온 중견기업이 국내 3위(시공능력 평가 기준) 건설기업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애초 의문이었다는 것이다.

"예상 못한 손실? 가격 깎으면 되는데…"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지 10일도 되지 않아 인수 포기를 선언한 호반건설이 밝힌 이유는 '대우건설의 해외 부실'이다. 대우건설 모로코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7일 공시한 작년 4분기 실적에 3000억원의 잠재 손실이 반영됐다. 기자재에 문제가 발생, 공기(工期)가 8개월가량 밀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호반은 "해외 사업의 우발 손실 등 최근 발생한 문제를 접하며 우리 회사가 대우건설의 현재와 미래의 위험 요소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고민한 결과, 인수 작업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금융·건설업계에서는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우건설 작년 실적은 매출 11조7668억원, 영업이익 4373억원이다. 매출은 1973년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은 2011년 산업은행 인수 이래 최대치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우건설 실적은 애초 증권사들이 예상한 영업이익 5000억원과 큰 차이가 없다"며 "예상 못한 손실이 있었더라도, 그걸 활용해 가격을 깎는 방법도 있는데 곧바로 인수 포기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최근에는 대우건설 임원들에게 개별 면담을 요구할 정도로 인수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는 사석에서 '대우'라는 브랜드의 중요성과 호반건설이 하지 않는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특히 호반건설의 이익금을 대우건설에 돌림으로써 발생하는 절세(節稅) 효과 등까지 조목조목 거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수차례 M&A 시장에서 입찰과 철회를 반복한 전력 때문이다. 호반건설은 2015년 이후 10번의 M&A에 뛰어들었지만, 실제 성사된 M&A는 울트라건설(208억원)과 제주 퍼시픽랜드(800억원) 단 두 건이다. 1000억원이 넘는 M&A를 성공한 적은 한번도 없다. 특히 금호산업 인수전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해 예상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써내 유찰시킨 것을 시작으로, 동부건설·보바스병원·SK증권 등 수천억원대 M&A에서는 번번이 막판에 발을 빼거나 실패했다.

이번 대우건설 인수 가격은 1조6000여억원이었다. 일각에서는 '홍보 효과'를 거론한다. 호반건설이 굵직한 이슈마다 이름을 걸어놓고 자금력 등을 과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대우건설 매각, 상당 기간 표류 불가피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 중단을 선언함에 따라,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매각이 상당 기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주도면밀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호반건설은 연간 매출이 대우건설의 10분의 1 수준으로, 대우건설 인수를 위한 실사(實査)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추가 부실이 나타날 경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애초부터 있었다. 산은은 대우건설이 작년 4분기 해외에서 3000억원의 잠재 손실이 발생했다는 공시 내용을 당일에야 대우건설로부터 보고 받았다고 한다. 산은이 대우건설 지분 50.75%를 가진 최대 주주로서 경영 관리단을 파견해 놓고도, 회사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이 대우건설 매각을 성공시키려고 했다면 호반건설의 인수 역량과 대우건설의 재무 상황을 사전에 정밀하게 비교한 뒤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했어야 한다"면서 "산은이 매각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다가 일을 그르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산은뿐 아니라 대우건설 매각을 위한 자문을 맡았던 미래에셋대우, BoA메릴린치 등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한 기업을 다른 기업에 팔겠다면 재무 상태 등을 주의 깊게 파악하고 정직하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산은 등이 대우건설 매각 과정에서 이런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면 '무능 아니면 사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